변화에 적응 못한 대처리즘(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때 쇠퇴하는 영국을 구원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으며 11년간 집권해온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제는 그 반대의 여론에 밀려 사임했다.
인플레,만성적인 재정적자,산업경쟁력 약화 등 고질적인 영국병을 치유했던 80년대의 정책노선,이른바 대처리즘이 새로운 시대상황에 더이상 적용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을 이는 의미한다.
시장경제의 철저한 경쟁논리에 따라 대기업을 사유화하고 거침없는 노조활동억제정책을 바탕으로 대처 총리는 한때 혼란스런 영국경제,약화된 국가의 통제력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80년대 동서대결시대에 미국의 보수적인 레이건행정부와 함께 서방진영을 대표하는 중심인물로 영국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었다.
대처 총리가 취임 당시 영국이 쇠퇴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꿈과 희망과 의지」를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은 한동안 설득력을 지니고 실현되는 것처럼 평가받기도 했었다.
노조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반대세력의 저항을 억누르고,인기가 없는 줄을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대로 강력히 추구한 사회·경제정책들은 경기 확대와 재정 건전화의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당시의 영국 사정으로는 우선 급한 대로 이러한 대처의 처방이 유효하고 필요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파생되는 부작용인 사회보장의 축소,기업위주정책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을 가져왔다는 강렬한 비판을 받게 됐다.
보수 우파 성향이 강한 자기 신념에만 집착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 적절한 대응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대처의 신념은 변화하는 국제적인 시대흐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럽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경제통합 노력에 항상 소극적이고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꺾지 않음으로써 영국을 뒤처지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가운데 유럽의 통합을 통해 공동번영을 추구하려는 시대적 조류에 동참하기를 주저함으로써 영국을 고립시키려 한다는 공격을 대처는 받아왔다.
이번 대처의 사임을 가져오게 된 직접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유럽통합을 둘러싼 보수당내 의견분열에 따른 것이었다. 이 때문에 대처는 많은 지지세력을 잃게 된 것이다.
대처의 사임은 아무리 치적이 있고 유능한 정치인이라도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밀려날 수밖에 없음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80년대의 한 시대에는 필요했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국 보수당은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정책 대안과 지도자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사라지고 영국의 대처가 퇴장하게 된 상황의 변화는 미영을 중심으로 펼쳐져온 보수세력의 퇴진으로 속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새로 전개되는 상황은 냉전형 대결이나 보수 대 진보의 대결같은 지금까지의 이념적 틀이 아닌 새로운 틀,즉 갈등을 최소화하는 평화공존과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우선 순위를 두는 틀이 국제환경에 주동기가 되고 있는 시대를 맞고 있다는 증거로서 대처의 퇴장에 의미를 부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