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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C 버클리대학 도서관 내 한국관 컬렉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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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조선 영조 36년(1760) 청계천 준설 공사를 마친 기념으로 그린 그림

"아사미 문고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세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UC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 내 한국관에는 '아사미 문고'라는 일본인 이름의 방대한 컬렉션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서울)에서 판사를 지낸 일본인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1869~1943)가 수집한 한국의 옛 자료들이다. 그의 이름을 따 '아사미 문고'라 부른다. 일제시대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출됐고, 일본이 패전한 후 다시 미국 버클리대에 팔려 갔다.

아사미 컬렉션이 미국까지 건너 오는 과정은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역사의 굴곡을 안타까워 하며 '아사미 문고'에서 아사미라는 명칭을 한국인 기증자의 이름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른바 '아사미 문고 재작명(再作名) 프로젝트'다.

◆하버드 옌칭도서관과 쌍벽=미국 내 한국학 자료의 소장 규모와 관련해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은 하버드대 옌칭도서관과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동아시아도서관의 한국학 선임 사서로 2003년부터 일하고 있는 장재용씨가 재작명 프로젝트를 위해 앞장을 섰다. 여기에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 단장을 맡고 있는 조성택(고려대 철학) 교수가 적극적으로 가세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버클리대 한국학연구소에 방문학자로 가 있는 소설가 이문열씨와 서울대 국문과의 이종묵 교수가 현지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오용섭 인천전문대학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버클리대학 내 한국학 관련 자료의 서지 정보를 조사하며 지원한다.

천로금강경

조성택 교수는 "아사미 문고의 이름을 다시 지을 수 있는 것은 버클리대학측의 한국학에 대한 인식과 배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이름 바꾸는 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학 자료를 모두 디지털화함으로써 국내 학자들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면 한국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용씨는 "일본으로 유출된 아사미 문고는 1920년 미쓰이(三井) 재벌에 팔려 '미쓰이재단 문고'로 이름이 바뀐 바 있고,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미쓰이 재단이 해체되자 그 장서가 다시 1950년 미국의 버클리대학에 팔려 현재에 이르게 됐다"고 소개하며 "문고의 이름을 바꾸는 데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사미 문고를 한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 장씨는 "해외 문화재를 모두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했다. "세계에 자랑할만한 해외의 우리 유산으로 잘 보존하면서 우리가 필요할 땐 언제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봤으면 한다"는 것이다. 장씨는 "해외 한국학계와 한국의 연구자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문화적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묵 교수 새 자료 찾아내=아사미 문고에 푹 빠져 사는 이종묵 교수는 최근 조선시대 효종 당시 왕실 주변 야사를 기록한 '견한록(遣閒錄)'이란 책을 발견했다. '공사견문록(公私聞見錄)'이란 이름으로도 이미 알려져 있고 국내에 번역본도 있지만, 이 교수가 찾아낸 '견한록'은 좀 특이했다. 한글 궁체로 쓰인 이 책의 필사자 이름이 뜻밖에 정조대왕의 누이인 청연공주였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면에 "청연공주 친필 장헌세자 제1녀(淸衍公主親筆莊獻世子第一女)"라 적혀 있다. 장헌세자는 영조의 노여움을 사 뒤주에서 최후를 맞은 사도세자를 가리킨다.

이 교수는 "사람 이름 등 단순한 내용을 잘못 적은 곳이 몇 군데 보이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불러주는 것을 청연공주가 필사한 것 같다"며 "필적이 참으로 아름다워 조선 여성의 품위가 느껴진다"는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이 교수는 "아사미 문고엔 청연공주가 쓴 '견한록'처럼 필사본이 많은 점이 주요한 특징"이라며 "단아한 품위를 드러내는 청연공주의 필사본 표지에 '아사미 문고'라는 딱지가 붙어 있어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사미 문고는

일본 법학자 아사미가 수집

필사본·탁본 많아 희귀자료

일본인 법학자 아사미가 일제시대 한반도에서 수집한 한국의 고전자료들이다. 전적 839종 4013책에 탁본이 155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해외에 유출된 한국의 다른 옛 전적들과 비교할 때 양과 질, 보존상태 등에서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목할만한 자료로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목민심서' 등 다산 정약용의 저서 필사본 18종, 다산의 친필로 추정되는 표지가 붙은 '사암경집 (俟菴經集)', 영조 36년(1760) 청계천 준설 공사를 마친 기념으로 그린 그림, 서포 김만중의 작품인 '구운몽'의 필사본 등이다.

아사미는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06년 7월 내한 해 통감부 법무관 보직을 맡았으며, 1910년 강제합병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법원에 소속되어 경성고등법원 판사를 겸직했다.

이 문고를 조사한 바 있는 원로 서지학자 천혜봉 전 성균관대 교수는 "아사미가 1906년 내한 이후 우리나라의 법제사(法制史)에 관심을 갖고 1918년 3월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꾸준히 모은 자료들"이라며 "아사미는 귀국후 이 장서를 바탕으로 연구하여 '조선법제사고'란 논문으로 1922년 도쿄대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천 교수에 따르면, 아사미 문고엔 해외로 유출된 한국 자료 중 희귀 자료와 유일본 자료가 어느 장서보다도 많다. 목판 등으로 찍은 것 보다 손으로 쓴 필사본이 많기 때문이다. 천 교수는 아사미 문고의 특징으로 법전이나 문물제도 등을 다룬 정치 분야 자료가 질량 면에서 우수한 점을 꼽았다. 그 다음으론 문집류가 많다고 했다. 삼국 및 고려 초기의 탁본도 적지 않아 우리나라 금석학 및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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