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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까자끼 자장가를 들으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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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30면

까자끼 자장가를 들으며
정철훈

자장가는 왜 이리 슬플까
그건 꿈에서 왔기 때문이지
이루지 못한 꿈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자장가는 전생에서 오는 것
세상이란 슬픈 곳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지
태어나기 전부터 알기 때문이지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자장가는 태반에서부터 빙글빙글 돌아가는 음반
바늘이 운명의 표면을 긁을 때 나는 소리
하늘의 별도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소멸한다지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자장가는 아기의 귀에 수면의 묘약을 흘러보내며 말하지
세상 같은 거 잊으라 잊으라
지구는 회전하고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그 회전축을 따라 돌고 있지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 (창비 2010)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들었던 노래, 자장가일 것입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가 반복되는 곡을 떠올릴 수도 있고 “엄마가 섬 그늘에”로 시작되는 ‘섬집 아기’를 먼저 꼽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느림과 반복이 만들어내는 자장가의 안온함. 하지만 어느 사이에 자리하는 슬픔 또한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서 왔기” 때문일까요. 참고로 까자끼는 우크라이나와 남부 러시아 땅에 주로 살았던 코사크족의 러시아식 발음입니다. 우크라이나 발음으로는 코자키. 아울러 ‘바유시키 바유’는 우리말로 자장자장 같은 뜻입니다. 전쟁도 벌써 일 년, 포성이 아닌 자장가를 들으며 단잠에 들면 좋겠습니다.

※시 전문은 joongang.co.kr/sunday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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