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의 구조적 비리부터 고쳐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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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범죄와의 전쟁」 이후 단속을 미끼로 한 공무원들의 금품갈취가 더 늘어났다고 한다. 정부는 국민에게 범죄와 전쟁을 벌이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이래서는 그 전쟁은 하나마나 결과가 뻔한 것이다.
애시당초 정부의 범죄에 대한 접근순서부터가 잘못되었다. 「범죄와의 전쟁」을 정말 벌이겠다면 우선 그를 집행할 공무원들의 도덕적 재무장부터 서둘렀어야 했다.
일선 공무원들의 비리와 부정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특정 몇몇의 일도 아닌 뿌리깊고 구조적인 것이다. 시청·구청·세무서·경찰서·파출소·소방서·동사무소·보건소 등등 단속권한을 가진 거의 모든 행정관서의 상당수 공무원들이 오래 전부터 비리와 부정의 구조적인 늪에 빠져 있다.
올바른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도태되거나 하루 하루를 양심과의 갈등 속에서 번민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오늘의 공직사회 풍토라는 게 공무원 자신들의 고백이기도 하다.
이런 풍토부터 깨뜨리지 않고서는 아무리 위에서 불호령을 내리고 채찍질을 한들 성과가 날리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양심적인 공무원들에게 갈등만 더 해줄 뿐이다.
우리들은 이 문제를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잘 알고 있다. 사람마다 강조하고 있듯이 결국은 정치가 정의롭고 그래서 권력의 상층부가 사회정의를 솔선수범해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따라서 정말로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려면 먼저 위 아래를 가릴 것 없이 공무원 사회에 대한 대대적인 도덕 재무장 운동이 펼쳐지고 양심적인 공무원이 발탁되는 인사쇄신이 단행되어야 한다. 동료 경찰관의 비리에 항의한 경찰관이 타 부서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식의 인사로 어떻게 범죄와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최근 서울시는 유흥업소 등의 단속을 맡아 왔던 공무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단행한 바 있는데 그같은 인사이동은 더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 서울시뿐 아니라 세무서·경찰 등의 인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그 인사는 일선 담당자에게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책임자들에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부정과 비리의 구조가 그것만으로 깨지리라고는 믿지 않지만 글개도 그 정도의 인사바람은 불어야 비로소 공직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의 타락이 공무원들의 부도덕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정과 비리는 도무지 그 가닥을 찾을 수 없이 얽히고 설켜 있다. 유흥업소 업주들이 공무원들의 등쌀에 못 살겠다고 하지만 법규를 제대로 지키면 돈을 뜯길 리가 없다. 뜯길 구석이 있으니까 뜯기는 것이다.
문제는 복잡하지만 우선 법과 그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그래서 법이 갈취의 수단이 아니라 정의와 질서를 확립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확립될 때 공무원들을 유혹하는 손길도 거두어질 것이다.
처우개선 등 공무원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가 보장해 주어야 할 부분도 적지 않지만 공직사회의 풍토쇄신은 그보다 앞서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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