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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흙수저 금수저’ 격차 심화…끊어지는 계층 사다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3호 30면

상위 가구 자녀 첫 월급, 하위보다 11% 많아

부모 경제력 따른 학력 양극화도 점점 커져

개인 능력 존중하고 ‘기회의 평등’ 보장해야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취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통설이 실증적으로 확인됐다. 최근 한국경제학회 학회지에 게재된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의 흙수저 디스카운트 효과’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은 잘사는 집 자녀들이 그렇지 않은 집 자녀들보다 취업 시장에서 얼마나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금수저’와 ‘흙수저’의 격차는 취업 시장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존재했다. 부모의 금융자산 수준을 네 등급으로 나눠 취업 시장에서 자녀의 성과를 비교한 결과다. 금융자산 상위 25% 가구의 자녀들은 하위 25%에 비해 첫 월급을 11%가량 더 받았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다. 처음부터 양질의 일자리를 얻은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은 생애 소득에서 큰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이때 부모가 경제적으로 충분한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자녀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력 격차에 미치는 영향도 계속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김성식 서울교대 교수가 소개한 연구 결과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0년의 교육 분야 양극화는 2010년보다 훨씬 심해졌다. 연구진은 소득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의 자녀 학업 성취도를 수치화했다. 2010년을 기준(100)으로 했을 때 2020년에는 대부분 지표에서 기준을 넘어섰다. 특히 고교 2학년의 학업 성취도는 가장 심한 양극화(177.7)를 보였다.

토론회 주제 발표를 맡은 김 교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의 학업 성취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그중에는 부모의 경제력이 사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추가적인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부분도 있다. 김 교수는 또 부모 자신의 교육 경험이 자녀의 학습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부모의 경제력 격차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문제다. 이런 격차를 아예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자녀의 교육과 취업 격차가 자꾸만 커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계층 상승을 바라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런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튼튼해야 사회의 건강한 발전이 가능해진다.

특히 ‘기회의 불평등’과 ‘결과의 불평등’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한 결과의 불평등은 원하든, 원치 않든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누구나 비슷한 출발선에서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보장받는 기회의 평등이 꼭 필요하다. 적어도 빈곤의 대물림 때문에 인생의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없게 해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경쟁의 규칙을 어기고 질서를 해치는 사람을 적발해 내는 것도 국가의 책임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하면서 국정과제의 하나로 ‘청년에게 공정한 도약의 기회 보장’을 제시했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역대 정부도 비슷한 약속을 내놨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거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여러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숨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면서 청년 세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진지하게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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