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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도, 기술도 없었다"…'그알 PD' 어쩌다 '먹튀' 상징됐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며 10년 안에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기업 테슬라를 넘어서겠다던 강영권 전 에디슨모터스 회장의 ‘쌍용차 먹튀 사태’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에는 강 회장이 자금 확보 계획은 물론 의사도 없이 12만명이 넘는 소액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고, 회생법원의 담당 법관까지 기망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적시됐다.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전 회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전 회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31일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강 회장이 방송 프로그램,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알린 엄청난 성과와 혁신적인 기업가 이미지 형성에는 다수의 거짓말이 동원됐다. 2021년 에디슨모터스의 매출이 817억원에 불과했지만, 그해 6월까지도 예상 매출이 2550억원에 이른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스타PD-에너지업체-에디슨모터스 '미다스의 손' 

그간 강 회장의 인생사를 담은 인터뷰 등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렀다. 매출 2조9500억원대의 쌍용차를 900억원대에 불과한 에디슨모터스가 인수하겠다는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계획이 일견 가능해 보이게 만든 것도 스타 PD에서 혁신 기업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듯했던 그의 인생사였다.

1985년 KBS 공채 PD로 입사한 그는 예능 프로그램 등을 연출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1991년 신생 방송국이었던 SBS로 이직해 유명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이끌었다. 3년 뒤 나온 ‘실종 사라진 아내’ 편이 43.8%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세운다.

강영권 전 에디슨모터스 회장이 지난 2020년 10월21일 tvN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모습. 사진 유튜브 캡처

강영권 전 에디슨모터스 회장이 지난 2020년 10월21일 tvN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모습. 사진 유튜브 캡처

 PD로 지내며 다양한 환경 사업 등에도 관심을 둔 그는 사업에 뛰어든 후에도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1998년 시작한 방송 외주 제작사를 통해 자본금을 마련, 당시엔 생소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진출했다. 2003년부터 이 업체를 운영해 13년 뒤 1138억원에 매각했고 2017년 전기차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전기버스 제조회사 에디슨모터스를 인수해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300억원대의 매출을 800억원대(2019년)로 끌어올리는 데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만년 도산 위기의 쌍용차는 ‘미래 사업을 이끌 혁신적인 사업가’가 필요했다.

쌍용자동차 경기 평택공장 정문. 뉴시스

쌍용자동차 경기 평택공장 정문. 뉴시스

자체 기술 없고, 자금 증빙도 허구…12만5000명 속았다

 그러나 검찰은 강 회장이 처음부터 쌍용차의 차세대 사업을 이끌 의사 없이, 불법 이익을 취득하기 위해 인수 사기를 기획했다고 보고 있다. 에디슨모터스는 지난해 1월 계약금 305억원을 내고 인수 절차를 밟아왔지만, 잔금 2743억원을 기한 내에 납입하지 못하면서 지난 3월 28일 쌍용차 인수 계약은 해지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우선 에디슨모터스는 애초에 쌍용차에서 전기차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었다. 에디슨모터스는 2020년 11월 무렵까지도 전기모터와 배터리셀 등 핵심 부품을 모두 중국에서 들여왔을 뿐,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공식 블로그에 나온 “3대 기술(모터 전자제어 배터리)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는 선전은 허위라는 것이다.

에디슨EV의 주요 공시 및 주가변동 현황. 사진 서울남부지검찰청

에디슨EV의 주요 공시 및 주가변동 현황. 사진 서울남부지검찰청

또 오랜 기간 쌍용차 인수 계획을 세우면서 이미 3000억 원의 인수자금을 자본금으로 출자한 펀드를 통해 확보하고 있다는 호언장담도 거짓이었다. 지난해 7~10월 매각 주간사인 한영회계법인의 요청에 따라 자금증빙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유효하지 않은 자료가 여럿 발견되자 서울회생법원은 일부 자료만 유효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이 인정한 일부 자료도 다른 투자사를 속여 편취한 투자확약서, 잔액증명서 등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충분한 자금이 조달된 것처럼 허위 외관을 작출해 서울회생법원 담당 법관을 기망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강 회장이 이 같은 거짓으로 점철된 쌍용차 인수전을 통해 에디슨EV(옛 쎄미시스코)의 주가 폭등을 유도해 불법 이익을 취득했다고 보고 있다. 에디슨EV 인수 자체가 ‘먹튀’를 위한 무자본 인수였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쪼개기 투자’로 재무 투자자 행세 세력도 

강 회장의 에디슨EV 인수의 과정엔 다수의 투자 조합 세력이 등장한다. 공소장에선 이들이 “다수의 조합을 이용하여 지분을 분산‧인수해 보호예수와 각종 공시 의무를 피했다”고 적시했다. 보호예수는 일반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대주주 등이 소유한 주식에 대해 일정 기간 처분을 제한하는 것으로,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계획이라면 이를 피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지난 6일 강 회장 등 에디슨모터스 경영진 뒤에서 재무 투자자 행세로 이익을 거둬온 자금조달책 6명도 기소한 상태다. 이들은 주식 차익으로 약 10개월 만에 각자 20~6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검찰은 강 회장 등이 총 1621억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는 약 12만5000명이다.

한편, 강 회장은 지난 22일 열린 첫 재판에서 자신을 향한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강 전 회장 측 관계자는 “(쌍용차) 인수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로 약속됐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 바람에 결국 인수합병에 실패한 것이지 부당이득을 챙기려한 목적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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