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ㆍ경­누가 거짓말을 하나/고흥길 사회부장(데스크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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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천 폭력조직 두목의 전과기록 누락을 둘러싼 검찰­경찰간의 공방전을 보면 한마디로 가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의 가장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사항인 전과기록이 고의든 실수든간에 누락 또는 조작됐다는 사실 자체도 중대한 문제지만 이를 둘러싸고 서로 책임을 미루는 국가기관들의 자세가 이제는 더 중대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검찰ㆍ경찰 어느 쪽에 의해서든 전과기록이 빠진 엄연한 사실을 놓고 서로 자기쪽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결국 어느 한쪽이,또는 양쪽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치안을 책임맡고 범죄를 다스리는 검찰ㆍ경찰과 같은 국가기관이 자기들끼리,또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더욱이 지금 때는 태평세월도 아닌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전시」인데 다른 어느 국가기관보다 더 긴장되고 기강이 서 있어야 할 검ㆍ경 내부에서 기강은 커녕 거꾸로 이런 실수인지 조작인지 사건을 저지르고 전체사회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행위를 벌이고 있으니 도저히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사태 초기에 즉각 경위가 밝혀지고 관련자에 대한 문책이 이뤄지는 것이 상식이고 정부는 응당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은데도 문제가 터진지 1주일이 돼가도록 지리한 공방전만 계속될 뿐 이렇다 할 화끈한 조치가 나오지 않는 점이다. 흐리멍텅하고 우유부단한 6공정권의 속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강력사건이 터지면 맥을 못추는 수사력인데 검ㆍ경의 이런 도덕성도,내부기강도 없는 자세로 범죄전쟁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지금 국민들의 관심은 검ㆍ경의 싸움보다는 이번 사건을 아예 고의에 의한 것으로 결론내리고 누가 어떤 의도에서 최태준의 전과 사실을 은폐하려 했느냐에 쏠려 있다.
다시말해 국민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수사과정상의 실수가 아니라 치밀히 계획된 「조작」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국민들은 이미 검ㆍ경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식의 책임소재 규명보다는 누가 폭력조직 두목을 비호하려고 그같은 엄청난 일을 했느냐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이 의혹을 갖는 점은 대개 다음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문제의 폭력두목 최가 여당의원의 석방탄원을 받을 정도의 인물로 공교롭게도 평민당 출신이 한명도 없는 인천시에서 반대파인 호남파 폭력조직을 습격해 지명수배를 받아왔다는 점.
둘째는 수배된지 3년만에 자수,부하들 보다도 가벼운 1년6월의 선고를 받고 항소를 하지 않았다는 점.
셋째는 89년 9월 전과 11범으로 수배자 명단에 올라 전단까지 뿌려진 인물이 어떤 경로로 자수해 「초범」으로 기소될 수 있었느냐는 점.
넷째는 최를 수사한 인천지검이 또다른 전과 14범의 폭력두목 송천복의 폭력혐의 부분을 무혐의로 석방했다는 점등이다.
이같은 의혹들 때문에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전과누락이라기 보다는 6공 정부의 도덕성ㆍ공신력이 걸려 있는 문제로까지 확대된 느낌이다.
따라서 진상규명 수사를 맡은 대검이 사건을 적당히 처리,말단 실무책임자의 탓으로 종결시켜 버려서는 국민들의 성이 차지않게 돼버렸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부에서는 사건조사 자체를 대검이 아닌 제3의 기관으로 넘겨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대검의 수사를 못 믿거나 공정성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조사대상이 경찰과 검찰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조사의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과거 5공때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때 경찰의 고문사실 여부를 경찰이 자체조사함으로써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수사발표가 나온 악몽이 아직도 국민들의 머리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검의 잘못 여부를 대검이 가리기 보다는 청와대 민정쪽이나 검ㆍ경 등 관계기관의 합동조사반이라도 구성해 본격적으로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검ㆍ경의 잘못을 가리는데 그치지 말고 전과기록 누락에 고의가 개재됐다면 왜 그런 사실이 발생했는가를 철저히 가려내야 하며 어떤 정치적 배후나 비호세력에 대해서도 단호히 응징해야 마땅하다.
만약 고의나 조작이 아닌 단순한 실수에 의한 것이라면 그 실수의 책임을 엄정히 물어 조기에 매듭지어야 옳다.
벌써 늦었지만 정부는 이 한심하고 치졸한 사건을 더 늦기 전에,국민들의 실망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 증폭되기 전에 집중적이고 과감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중 문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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