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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서툰사람들' 돌아온 장진 "성공만능시대 바보 미학 그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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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표 '착한 코미디'가 두드러진 연극 '서툰 사람들'. 교사 화이의 집에 침입한 도둑 덕배가 밧줄 자국 안 남게 묶는 법을 적어온 메모를 보며 매듭을 고민하고 있다. 주연 트리플 캐스팅 중 배우 이지훈, 김주연이 각 역을 맡은 모습이다. [사진 장차, 파크컴퍼니]

장진표 '착한 코미디'가 두드러진 연극 '서툰 사람들'. 교사 화이의 집에 침입한 도둑 덕배가 밧줄 자국 안 남게 묶는 법을 적어온 메모를 보며 매듭을 고민하고 있다. 주연 트리플 캐스팅 중 배우 이지훈, 김주연이 각 역을 맡은 모습이다. [사진 장차, 파크컴퍼니]

여교사 혼자 사는 집에 남자 도둑이 들었다. 하필 가장 값나가는 가전제품이 고장난 386컴퓨터 뿐인 가난한 집이다.
도둑도 어설프긴 매한가지다. “젊은 처자의 손목에 밧줄 자국이 남을까봐” 심혈을 기울여 매듭을 묶더니, 도둑 맞을 게 없어서 자존심 상한 집주인의 기분까지 풀어준다. 이래 갖고서야 도둑질이 될까, 집주인(과 관객)이 걱정할 정도다.
갑자기 들이닥친 집주인의 친구와 아버지, 투신 소동을 벌이는 아래층 남자(세 역할 모두 ‘멀티맨’ 배우 한 명이 맡았다)까지, 요새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 어수룩한 인물들의 하룻밤 코미디가 110분간 펼쳐진다.
‘장진표 코미디’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연극 ‘서툰 사람들’이 10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달 26일 예스24스테이지에서 개막한 ‘서툰 사람들’은 영화감독 겸 연출가 장진이 군 복무 시절 직접 극본을 써 그를 '연극계에 샛별 같은 신인스타'(중앙일보 1995년 10월 26일자)로 주목 받게 한 출세작이다.
1995년 서울연극제에서 박원경 연출로 초연할 당시 이미원 연극평론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놀랍게도 어느 공식참가 공연보다도 더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고 평가했다.
30년간 류승룡‧강성진‧김원해‧장영남‧예지원 등의 배우들이 신인 시절 거쳐갔다.

장진 '연극계 샛별' 만든 착한 코미디 #내년 2월 19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빡빡 살벌한 세상, 잠시 어리숙하게"

이번 공연은 장진이 직접 연출해 전회 매진을 기록한 2007‧2012년 시즌에 이어 10년 만에 다시 연출을 맡았다. 지난달 26일 개막에 앞서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이 시기를 놓쳐서 50대 중반에 연출할 작품은 아닌 것 같았다”는 그는 “30년 전엔 뭐가 그렇게 해맑았는지 캐릭터도 장면도 착하기만 해서 고친다고 고쳤는데 그래도 고칠 게 많더라”며 웃었다.
“1시간 50분간 등·퇴장 없이 극의 속도와 리듬을 모두 배우에게 맡기는 무대가 요즘 많진 않아요. 배우들에게 많은 짐을 준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이 긴장하고 집중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어요.”
그는 ‘서툰 사람들’에 담긴 '바보 미학'을 강조했다. 대학을 거쳐 군 제대 닷새 전, “제도와 시스템을 다 거치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맞닥뜨려야 했던” 시기에 이 작품을 쓰고, 지금 또 다시 꺼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 취준생도 그렇겠지만, 다들 너무 잘하고 완벽해 보이고 저도 그러려고 노력했을 때 이 연극 속 친구들, 어리숙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순간들이 생겼다”면서 “관객들이 빡빡하고 살벌한 세상에 저 친구들처럼 잠시 살아봐도 좋겠다거나, 나와 다른, 좀 미숙한 부분에 대해 관대하고 애정 있게 본다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대가 바뀌어서 이 작품이 안 먹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은 사실 덜 했다”면서 “관객이 웃고 나와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거나 관람을 후회하는 코미디가 되지 않도록 매번 고민했다”고 했다.

"요즘 사회 20대 웃음 가장 커, 의견 듣고파" 

연극 '서툰 사람들'을 10년만에 연출한 영화감독 겸 연출가 장진을 지난달 15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사진 장차, 파크컴퍼니

연극 '서툰 사람들'을 10년만에 연출한 영화감독 겸 연출가 장진을 지난달 15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사진 장차, 파크컴퍼니

동명 자작 연극을 영화로도 선보여 800만 흥행을 거둔 ‘웰컴 투 동막골’(2005), TV 예능쇼 ‘SNL 코리아’(2011~2012) 등 매체를 넘나들며 웃음을 자아낸 그는 “시대마다 우리 사회에서 웃음소리가 큰 세대가 다르다”고도 했다.
“예전엔 40대 초반의 웃음소리를 앞뒤 세대가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20대 웃음소리가 가장 크다. 20대가 웃고 있으면 다른 세대가 뭐가 웃긴 것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면서 “요즘 20대는 자기도 불완전하면서 서로 헐뜯고 다른 세대를 이해 못하는 기성세대를 지켜봐 온 세대인 만큼 좋은 대안을 제시해줄 것 같다는 기대도 한다. 이번 작품도 20대 관객들이 와서 이해 안 되는 부분을 꼬집어주면 잘 경청하겠다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그가 "팬덤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배우들과 하는 즐거움"을 위해 소극장 공연 등을 보며 직접 배우를 선발했다.
SBS ‘육룡이 나르샤’, KBS2 ‘달이 뜨는 강’ 등 드라마를 주로 해온 배우 이지훈의 연극 데뷔작이다. 그를 비롯해 도둑 덕배 역의 오문강‧임모윤, 집주인 화이 역의 김주연‧최하윤‧박지예 등 젊은 배우들이 포진했다. 1인 3역의 멀티맨은 이철민‧안두호가 더블 캐스팅됐다.
17일 기준 관람평점 9.4점(만점 10점)을 기록한 인터파크 예매 관객 중엔 “인간미 나는 웃음” “연기가 좋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다만, 30년 전 시대 배경을 고친 작품이다 보니 “시대성이 떨어지는 대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리숙한 도둑과 집주인의 우정 쌓기가 웃음을 주긴 하지만, 극 초반 식칼을 들고 무단 침입한 도둑을 잘생긴 외모와 또래라는 공감대를 내세워 연애 상대로 바라보게 된다는 전개가 불편하다는 감상 평도 있다. 공연은 내년 2월 19일까지, 만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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