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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벼슬 피자까지 왜…로마 피자 월드컵, 韓심판이 놀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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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당' 규현의 피자 스승으로도 유명한 이진형 셰프가 본인의 시그너처인 대형 피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핏제리아 오

'강식당' 규현의 피자 스승으로도 유명한 이진형 셰프가 본인의 시그너처인 대형 피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핏제리아 오

지난달 초 이탈리아에서 열린 피자 경연대회, 로마 월드컵. 올해로 20년째 열리는 유명한 피자 대회로,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모여들어 최고의 피자를 겨룬다. 사흘에 걸쳐 진행된 이 대회의 심사위원석에 유일한 아시아인이 있었으니, 한국의 이진형 셰프다. 이탈리아 최고의 피자를 선발하는데 한국인이 초청된 것. 내로라하는 전국 김치 명인들이 자존심을 걸고 경합을 하는데, 심사위원이 이탈리아 사람인 셈. 약 270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웅성거린 것도 지나친 일은 아니다.

이진형 셰프는 지난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아시아인이 심사위원석에 앉으니 어떤 참가자가 ‘이 사람은 (이탈리아어를) 알아듣지도 못하지 않느냐’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탈리아 정통 나폴리 스타일 피자를 현지에서 배운 이 셰프는 바로 “이탈리아어를 이탈리아인처럼은 못할지 몰라도, 피자 만드는 건 다 알아들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이탈리아어로 응수했다고 한다. 이 셰프의 심사와 설명을 들은 참가자들은 곧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친해졌다고 한다.

로마 월드컵 피자 경연대회 심사위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이진형 셰프. 사진제공 이진형 셰프

로마 월드컵 피자 경연대회 심사위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이진형 셰프. 사진제공 이진형 셰프

이진형 셰프는 나폴리 피자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피자에 빠져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주방 청소부터 시작했다. 도우 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청소를 끝내놓았고, 영업이 끝난 자정에 밀가루 반죽 연습을 시작하며 배웠다. 현재 이탈리아 메트로피자협회장인 미켈레나 아띨리오 및 미켈레 쿠오모 피자이올로(피자 명장)가 그의 스승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피자 전문점, 핏제리아오를 차리면서는 나폴리에서 화덕을 공수해왔다. 그의 레스토랑은 문전성시. 국내에서도 방송인 강호동과 나영석 프로듀서의 ‘강식당’에서 규현의 피자 스승으로 인지도가 있다.

방송인 규현(왼쪽)과 이진형 셰프. 사진제공 이진형 셰프

방송인 규현(왼쪽)과 이진형 셰프. 사진제공 이진형 셰프

이탈리아 최고의 피자를 심사하는 로마 월드컵 심사는 쉽지 않았다. 이진형 셰프가 심사를 위해 맛본 피자는 모두 280여 조각. 늘어난 건 체중만은 아니다. 이탈리아 피자의 전통과 현재, 미래에 대한 고민과 철학도 쌓았다. 그는 “피자는 이탈리아의 음식이지만 미국을 통해 대중화됐지만, 이제 세계의 피자 트렌드는 정통 이탈리아식 클래식 피자와, 현대적 감각으로 변화를 꾀한 컨템퍼러리 피자”라고 전했다.

컨템퍼러리 피자란 뭘까. 이번 로마 월드컵에서 프랑스 출전자들이 선보인 분자요리 피자가 대표적 사례다. 토마토와 바질, 치즈 등 전통적 토핑이 아닌 새로운 재료를 접목하는 시도도 있다. 심지어 닭 볏을 토핑 재료로 쓰기도 한다고. 파인애플을 피자 토핑으로 올린 하와이안 피자에 질색팔색 했던 이탈리아인들이지만, 이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전통을 지키면서도 진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 위촉과 함께, 이진형 셰프는 최근 겹경사를 맞았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맛집 선정 가이드인 감베로 로쏘의 인증을 받은 것. 프랑스에 미쉐린 가이드가 있다면, 이탈리아엔 감베로 로쏘가 있다. 선정 절차도 까다롭다. 그러나 이 희소식은 그에겐 또다른 고민의 출발점이다. 그는 “감베로 로쏘는 자국 이탈리아의 맛을 충실히 재현하는 해외 레스토랑에 좋은 점수를 준다”며 “우리 레스토랑은 이탈리아 현지 맛에도 충실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요리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고민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평론가들 중에선 이탈리아 정통의 맛만 고집하는 분도 있지만, 사실 이탈리아 정통 카르보나라 파스타는 한국인의 입맛엔 짠맛이 과하다”며 “오래 현지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백년가게를 만드는 것이 꿈인데, 그렇다면 정통과 현지의 입맛 중에선 고민을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양한 피자가 등장한 로마 월드컵 피자 대회. 사진제공 이진형 셰프

다양한 피자가 등장한 로마 월드컵 피자 대회. 사진제공 이진형 셰프

그는 정통과 현지 사이에서 답을 찾기 위해 줄다리기 중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시래기를 피자 토핑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그는 “나폴리 피자의 핵심은 결국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로컬 푸드라는 점”이라며 “최근 이탈리아 현지에서 인기인 피자 이름이 살시차 에 프리알리엘리인데, 생소시지와 줄기 브로컬리로 만든 것인데 놀랍게도 시래기와 맛이 비슷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시래기를 활용해 비슷하게 만들어봤는데 맛이 놀랍게도 비슷했다”며 “한국의 다양한 향긋한 봄나물이며, 김치와 여러 버섯을 활용한다면 이탈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국식 열매를 맺는 피자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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