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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안돼!” 소리치면 “탈락입니다”…대한민국서 처음 치른 이 시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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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호 17면

지난 13일 양정연(27·인천)씨가 로빈(5세)과 서로 마주보며 호흡을 맞춰 실기로 처음 열린 반려인 능력시험을 치르고 있다. 로빈은 분위기에 적응 못해 다소 흥분한듯 했지만, 양씨와 함께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김홍준 기자

지난 13일 양정연(27·인천)씨가 로빈(5세)과 서로 마주보며 호흡을 맞춰 실기로 처음 열린 반려인 능력시험을 치르고 있다. 로빈은 분위기에 적응 못해 다소 흥분한듯 했지만, 양씨와 함께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김홍준 기자

지난 13일 유기견 포터(1~2세 추정, 오른쪽)과 미스터(6~7세 추정)와 함께 반려인 실기 능력시험을 치른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 관계자들. 정준희 기자

지난 13일 유기견 포터(1~2세 추정, 오른쪽)과 미스터(6~7세 추정)와 함께 반려인 실기 능력시험을 치른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 관계자들. 정준희 기자

‘춘장’이, 곧이어 ‘순대’가 나왔다. ‘땅콩’도 선보였다. 먹을거리 이름만으론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인데,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나라에서 실기로 처음 열린 ‘반려인 능력시험’에서였다. 이  시험을 주최한 동그람이 김영신 대표는 “반려인들은 음식 이름을 쓴 반려동물이 오래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 조리퐁·브라우니 등도 참가했다”라며 웃었다.

우리나라 반려인구는 조사 주체에 따라 313만 가구(통계청, 가구당 평균 구성원 2.3명 단순 대입시 719만명 추정)~638만 가구(농림축산식품부, 1467만 명 추정)다. 애완(愛玩)에서 반려(伴侶)로 용어가 바뀌듯, 사람과 동물은 수직에서 수평을 향해 관계의 기울기를 낮추고 있다. 이런 ‘관계’의 점진적인 재정립은 ‘반려인 능력시험’이라는 일요일 낮의 열기를 만들어냈다.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문화체육회관에서는 소리 없는 뜨거움이 피어올랐다.

‘사전교육이수제’ 도입 디딤돌 기대

지난 13일 반려인 실기 능력시험 중 보호자와 다른 반려견이 있는 카페 구간을 지나는 ‘순대’와 서효정씨. 정준희 기자

지난 13일 반려인 실기 능력시험 중 보호자와 다른 반려견이 있는 카페 구간을 지나는 ‘순대’와 서효정씨. 정준희 기자

“조용하죠? 시험 이름만 보면 시끌벅적하지 않을까 싶은 텐데 말이죠.”

김영신 대표의 말대로, 절집에 온 줄 알았다. 소리가 울릴까, 스태프들은 속삭이듯 소통했다.  뒤꿈치가 바닥에 끌릴까, 대웅전 마루에 오르듯 걸음새는 조심스러웠다. ‘실기시험’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반려견을 서로 자극하지 않으려는 ‘페티켓(Pet+Etiquette)’이 깔려있다는 게 시험 관계자들의 말이다.

페티켓은 응시 자격이기도 하다. ‘즉각 탈락 사안(그래픽 참조)’ 중의 하나로 ‘다른 반려견이나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경우’를 둔 것은 그런 의미다. 이 ‘탈락 사유’ 중 눈길 가는 항목이 있다. ‘반려견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목줄을 과도하게 당기는 경우’다.

시험을 마친 강혜영(25, 서울 금천구)씨는 “오늘 용이(10, 요크셔테리어)가 새로운 환경이라 흥분해서 그런지 줄 당김이 조금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날 심사위원을 맡은 김민희(33·스파크펫) 트레이너는 “강 보호자의 경우처럼 반려견이 줄을 당긴 건 괜찮다”라며 “문제는 그다음 보호자의 대처 능력”이라고 밝혔다. 반려견을 꾸준히 교육하고, 흥분을 낮추는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반려인의 고성과 줄 당김은 처벌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험에서는 금기시한다.

지난 13일 예정에 없던 취재진 앞 ‘번외 시험구간’에서의 ‘밤토리’와 이슬아씨. 정준희 기자

지난 13일 예정에 없던 취재진 앞 ‘번외 시험구간’에서의 ‘밤토리’와 이슬아씨. 정준희 기자

‘반려사회’에는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다. 알파독(Alpha dog) 이론은 개들이 서열과 계층을 이루듯, 사람이 개를 강압적이고 지배적인 기술로 종속시킨다는 개념이다. 잘못된 결과에는 처벌이 따른다. 긍정강화(positive reinforcement) 이론은 특정 행동에 대한 보상을 통해 반려인과 반려동물 간의 유대를 쌓는다는 개념이다. 반려인 능력시험도 최근 트렌드가 되는 긍정강화 이론을 토대로 한다. 호통 대신 소통을, 제압 대신 신뢰를 눈여겨보는 이유다.

시험장에는 다른 반려견이 있는 카페, 자전거가 지나가는 횡단보도, 원을 그리며 돌게 되는 코스 등, 각종 자극과 장애물이 설정돼 있었다. 반려인은 반려견과의 신뢰와 소통을 통해 이곳들을 통과해야 한다. 60점이 넘으면 합격이다. 그런데 정작 시험을 치르는 반려인들은 진지했지만, 합격에 ‘필사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횡단보도 앞 자전거 자극에서 대기 중인 반려견과 반려인. 바퀴는 반려견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극이다. 정준희 기자

횡단보도 앞 자전거 자극에서 대기 중인 반려견과 반려인. 바퀴는 반려견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극이다. 정준희 기자

강혜영씨도, 양정연(27·인천)씨도 “나와 강아지가 서로 제대로 해주고 있는지 궁금해서 시험장에 나왔다”고 했다. 최주리(34, 서울 강서구)씨는 “우리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고 밝혔다.

반려인 실기시험은 필기시험을 거쳐 응시할 수 있다. 지난달 23일 열린 온라인 필기시험(강아지·고양이 2개 부문)에는 반려인 6000명이 응시했다. 필기시험 성적 상위자에게 응시 기회 우선권을 주는 실기시험을 통과하면 ‘서울 펫티즌’이라는 자격을 받는다. 필기시험은 2019년부터 4회째다. 이번 출제문제 일부를 입수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Q 인주는 반려견 재상이와 반려묘 상아와 함께 5년째 생활하고 있다. 재상이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2주 넘게 상아는 활동이 줄고 식욕이 저하되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다음 반려동물의 '펫로스'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고양이는 평소보다 공격적일 수 있다.
② 반려동물도 죽음을 이해하고 슬퍼한다.
③ 남은 반려동물과 함께 할 시간을 늘린다.
④ 반려동물의 우울증이 지속할 경우 병원에 찾아가 수의사의 진찰을 받는다.
⑤ 공허함으로 우울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비반려인이라면, '펫로스(pet loss)라는 단어에 당황했을 수도 있을 터.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Q 겨울철 자동차 엔진룸 내에 종종 들어가는 길고양이를 내보내기 위한 ‘모닝노크’ 방법이 아닌 것은?
① 차를 타기 전 엔진룸을 여러 번 두드린다.
② 차문을 닫을 때 일부러 크게 닫는다.
③ 차에 타면 좌석에서 발을 크게 구른다.
④ 차에 타서 야옹냐옹 소리를 낸다.
⑤ 출발 전 경적을 울려준다.

스위스선 필기·실기시험 봐야 입양

‘애드(10세 추정)’와 지난달 23일 치른 반려인 필기시험을 1위로 통과한 최신혜씨. 정준희 기자

‘애드(10세 추정)’와 지난달 23일 치른 반려인 필기시험을 1위로 통과한 최신혜씨. 정준희 기자

한국고양이수의사회와 동물병원 연합체 벳아너스, 반려동물 복합문화 공간 놀로의 도움으로 낸 필기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한 최신혜(34, 서울 금천구)씨가 애드(10세 추정, 믹스)와 함께 시험장에 들어섰다. 최씨는 애드가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복도와 시험장 대기석을 계속 함께 오갔다. 최씨는 “행동학 분야는 어느 정도 풀겠는데, 수의학 쪽은 어렵더라”며 “반려인도 공부해야 하는구나 싶어서 응시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애드를 파주의 한 유기동물 보호단체에서 데려왔단다. 최씨처럼 입양한 반려견은 유기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동행)’에서는 유기견 둘과 함께 나왔다. 최미금 동행 이사는 “포터(1~2세 추정, 포인터)는 지난 5월에, 미스터(6~7세 추정, 믹스)는 8월에 구조했다”며 “애들이 입양돼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위해 시험을 치렀다”고 말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기동물 수는 지난 2017년 10만 마리를 돌파한 뒤 2019년 13만5791마리를 찍었다. 2020년엔 13만401마리였고, 건수로 발표된 2021년에는 11만6984건이었다. 2020년 발생 건수가 12만8000여건이었음을 고려하면 2021년 유기동물 수는 12만 마리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40%가량은 보호소에서 사망(안락사+자연사)한다.

첫 반려견을 잃은 뒤 우울증에 걸린 이단비씨와 유기와 폭력이라는 아픔을 가진 ‘꼬망(4세)’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생활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첫 반려견을 잃은 뒤 우울증에 걸린 이단비씨와 유기와 폭력이라는 아픔을 가진 ‘꼬망(4세)’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생활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동물학대도 늘고 있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2016년 303건에서 2020년 992건, 2021년 1072건으로 6년간 3배 이상 증가했다. 개물림 사고도 문제다. 2016년 2111건, 2019년 2154건, 2020년 2114건 등 매년 2000건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번 실기시험은 이런 상황 속에서 “보다 나은 반려인과 반려견 환경을 꾸려나가자는 발걸음”이라는 게 주혜란 서울시  동물정책팀장의 말이다. 논의만 될 뿐, 좀처럼 진전이 없는 ‘사전교육이수제’를 향한 디딤돌이라는 분석도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는 동물학대·유기동물·개물림 등은 사람의 책임의식과 교육 능력 부족에서 비롯한다”며 “반려인 실기시험은 사전교육이수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신을 점검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음식 이름은 반려동물의 장수를 기원한다. 이름하여 ‘순대’. 김홍준 기자

음식 이름은 반려동물의 장수를 기원한다. 이름하여 ‘순대’. 김홍준 기자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의 니더작센주에서는 모든 반려인에게 반려견 면허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반려견을 입양하려면 필기와 실기시험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아일랜드는 면허증을 가진 16세 이상만이 반려견을 키울 수 있다.

이날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시험 도중 반려견이 용변을 본 것. 멀리 춘천에서 온 이단비(31)씨는 “살짝 당황스러웠다”라면서도 “그래도 평가 항목에는 없는 상황이라 괜찮지 않나”라며 웃었다. 심사위원 김민희·제이(32·스파크펫) 트레이너도 “문제없다. 되레 보호자의 ‘처리’가 신속하고도 차분했다”는 반응이었다. 이단비씨의 반려견 꼬망(4세·말티즈)은 공장을 전전하다가 구조돼 입양됐고 큰 반려견에게 물리기도 했다. 이전의 반려견은 뇌질환으로 사망했는데, 이씨는 우울증에 걸렸단다. 이를 펫로스(pet loss)로 부른다. 이씨는 “둘 다 아픔을 이기고 새 출발 하기에 프랑스어로 ‘시작하다’를 뜻하는 꼬망세(commencer)에서 반려견 이름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춘천으로 돌아가는 이 둘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반려인의 합격 여부를 떠나, 이들에게 힘을 준다면 시험 자체는 합격이지 않을까.

※ 필기시험 정답: ②와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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