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중우주 휘저은 양쯔충 다중연기 “각본 정말 기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6면

올해 예순의 배우 양쯔충은 변화무쌍하되 중심을 잃지 않은 우아한 연기로 40년 연기 관록을 폭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더쿱]

올해 예순의 배우 양쯔충은 변화무쌍하되 중심을 잃지 않은 우아한 연기로 40년 연기 관록을 폭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더쿱]

다 망해가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 여성이 멀티버스(다중우주)를 구할 최후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올해 예순의 말레이시아계 배우 양쯔충(楊紫瓊·양자경)에게 새로운 전성기를 선사한 미국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원스(이하 에에올)’(감독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의 독특한 설정이다.

‘미나리’ ‘미드 소마’ 등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 명가 ‘A24’ 배급 작품으로, 지난 3월 전 세계에 개봉하며 제작비 1500만 달러의 7배에 달하는 1억 달러 매출을 올렸다. 한국에선 지난달 12일 개봉해 23일 만에 2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액션부터 화장실 유머, 황당무계한 SF, 왕자웨이 영화풍의 멜로, 가족 드라마를 넘나드는 이번 영화에서 양쯔충은 변화무쌍하되 중심을 잃지 않은 우아한 연기로 40년 연기 관록을 폭발시켰다는 평가다. ‘007 네버 다이’(1998)의 치명적인 중국 스파이로 할리우드 진출한 지 24년 만의 첫 주연 영화다. 내년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까지 거론된다.

지난 5월 미국 LA 골드하우스갈라에 참석한 양쯔충(왼쪽)과 키 호이 콴. [AP=연합뉴스]

지난 5월 미국 LA 골드하우스갈라에 참석한 양쯔충(왼쪽)과 키 호이 콴. [AP=연합뉴스]

연출을 맡은 두 감독은 유튜브 조회수 11억 건을 기록한 뮤직비디오 ‘턴 다운 포 왓’(2013), 무인도에 갇힌 남자와 방귀 뀌는 시체의 동행을 그려 선댄스 감독상을 받은 ‘스위스 아미 맨’(2016) 등 평범한 인물들이 연루된 황당무계한 상상력으로 주목받은 신예. ‘에에올’은 이들이 처음에 점 찍은 청룽(成龍·성룡)의 캐스팅이 불발된 뒤 선망하던 또 다른 액션 스타 양쯔충이 수락하며 만들어졌다. 양쯔충은 “정말 기발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우릴 놀라게 하고 각종 말도 안 되는 우주로 데려가지만 깊은 감정을 느끼게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의 주인공은 생계에 찌든 고지식한 중년 에블린(양쯔충). 레즈비언인 딸(스테파니 수)의 애인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그는 세탁소가 국세청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날, 설상가상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에게 이혼서류까지 받아든다. 인생 바닥을 찍은 순간 우주에서 온 지령을 통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에블린’들이 사는 무한한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눈뜬 그는 자신만이 그 모든 에블린들의 능력을 한데 흡수해 모든 멀티버스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3개 챕터로 나눠진 영화의 부제이기도 한 어려운 제목은 바로 자신의 지나쳐온 모든 기회들(Everything)을 깨닫고, 모든 삶의 가능성(Everywhere)을 돌아본 뒤, 이 모든 걸 합친(All at once) 최대 잠재력을 발휘하는 에블린의 여정을 뜻한다. 무수한 삶의 선택지들을 헤치고, 에블린이 택하는 건 곁에 있었으나 소중함을 간과했던 존재들. 바로 가족이다.

영화에선 양쯔충의 지난 삶의 경험들이 빛나게 활용된다. 그는 말레이시아 화교 집안에서 태어나 4살에 발레를 시작했고, 15살에 변호사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 건너갔다. 영국 왕립무용학교 재학 중 “너무 뚱뚱하다”는 발레 선생의 잔인한 선고와 척추 부상으로 꿈을 접었다.

1983년 미스월드 대회 출전을 계기로 이듬해 청룽과 시계 광고를 찍으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예스 마담’ 시리즈, ‘폴리스 스토리3’ 등 1980~9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의 액션 스타로 활약했다. 하지만 배우 경력을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96년 ‘양자경의 스턴트우먼’을 찍던 중 심각한 허리 부상을 당했다.

‘007’ 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후 비영어 작품으로 아카데미 최다 후보 지명 및 북미 최고 흥행을 거둔 무협영화 ‘와호장룡’(2000)을 비롯해 뤽 베송 감독의 아웅 산 수치 여사 전기영화 ‘더 레이디’(2011), ‘미이라’ ‘스타트렉’ 등 블록버스터 시리즈에서 액션을 겸비한 강단 있는 역할을 도맡았다.

‘크레이치 리치 아시안’(2018)에선 아시아의 재력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에선 미지의 아시아계 무림고수 등 서구 관객의 흥미를 끌법한 역할을 했다면 ‘에에올’은 “차이나타운이나 슈퍼마켓에 가면 마주치는 여자, 모든 이민자 여성”을 연기했다.

이는 아시아계 이민자 출신인 다니엘 콴 감독의 의도와도 상통한다. 콴 감독은 “이 영화는 결국 소란 속에서 가족과 다시 함께하려는 엄마에 관한 영화”라면서 “처음부터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을 의도는 아니었지만, 다중우주에선 각종 가능성과 후회를 느끼게 된다. 이민자들도 그런 위험을 감수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