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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자유와 즉흥의 힘을 믿는다"

중앙일보

입력

4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그는 ″마음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한시간 이상 바흐 연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고 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4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그는 ″마음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한시간 이상 바흐 연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고 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바흐 해석의 권위자’, ‘피아니스트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69)가 4년 만에 내한한다.
11월 6일 롯데콘서트홀, 10일 부산문화회관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이메일 인터뷰에서 쉬프는 “각국의 박물관에서 한국 도자기를 보는 걸 좋아한다. 열정적인 청중도 좋다. 바닷가의 아름다운 도시 부산과 첫 만남도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4년 만에 내한 롯데콘서트홀, 부산문화회관 공연 #매일 아침 바흐 연주로 시작 “몸과 마음 정결하게” #옛악기 연주정보 축적, 다른 방식으로 피아노 연주 #"젊은 연주자 콩쿠르 출전 멈추라. 경쟁 그만두라”

쉬프 역시 여느 음악인과 마찬가지로 지난 2년간을 힘겹게 보냈다. “코로나는 끔찍했다”는 쉬프는 “우울하기도 했지만 연주의 리듬을 잃지 않으려 자신을 몰아붙였다”고 했다. 그에게 해독제는 바흐다. 날마다 한 시간 이상 바흐 연주로 아침을 연다. 쉬프는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영혼・육체를 깨끗이 하는 위생관리”라고 자신의 일상을 설명했다.

오랜 음악 애호가들에게 쉬프는 글렌 굴드와 더불어 ‘피아노로 연주하는 바흐 음악의 최고봉’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바흐 시대엔 피아노가 없었고 모차르트나 베토벤 시대에도 지금의 피아노와는 사뭇 다른 악기를 연주했다. 시대 악기를 사용하는 원전 연주가 보편화된 현대, 현대 피아노로 이들 작곡가의 음악을 해석하는 쉬프에게 피아노란 악기의 의미를 물었다.

“피아니스트는 과거의 건반 악기들과 친숙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복제된 옛 악기와의 경험이 필요하죠. 운 좋게도 저는 하이든과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이 직접 사용했던 악기로 연주해 볼 수 있었고, 악기들이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고 소리를 내는지 알게 됐습니다. 제 귀로 축적한 이러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모던 피아노에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쉬프의 내한 연주 프로그램은 바로크 고전, 낭만 독일음악 위주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내한인 2008년 쉬프는 바흐와 슈만, 베토벤을 연주했다. 2011년에는 베토벤 소나타를, 2014년에는 슈만과 멘델스존 등 낭만주의 음악을, 2016년에는 바흐 작품만을, 2018년에는 바흐,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를 연주했다.

쉬프는 이번 내한공연 프로그램을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곡 중에서’라고만 밝혔다. 여전히 위에 언급한 기존 프로그램의 범주 안에 들긴 하지만 자세한 연주곡목이 공개되지 않아 애호가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최근 안드라스 쉬프는 당일 공연장의 음향, 피아노의 상황, 관중을 고려하여 연주 전 현장에서 선택된 레퍼토리를 구두로 소개하며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쉬프는 “결과적으로 청중에게 더 나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서울 부산 외에도 파리 필하모니 홀, 도쿄 오페라 시티 홀 등에도 이같은 형식으로 연주곡목이 안내돼 있다. 가령 지난 8월 루체른 페스티벌 마티네(오전) 콘서트에서 쉬프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 바흐 카프리치오 BWV992, 하이든 소나타 32번, 모차르트 소나타 K570, 베토벤 소나타 30번에 앙코르로 슈베르트 소나타 D959 중 2악장을 연주했다.

4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그는 ″마음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한시간 이상 바흐 연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고 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4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그는 ″마음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한시간 이상 바흐 연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고 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쉬프는 “자유와 즉흥의 힘을 믿는다”며 “관객에게 2년 뒤 연주할 프로그램을 미리 말해준다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움을 노출했다. 그러면서 그 일을 ‘2년 뒤의 저녁식사 메뉴’에 비유했다. 쉬프는 또 “놀라움도 공연의 한 요소”라며 “이런 방식을 통해 훨씬 큰 자유로움을 느낀다. 관객들에게는 공연이 더욱 새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쉬프는 “오늘날 청중이 반세기 전에 비해 음악 교육과 정보가 훨씬 적다”며 세계 주요 콘서트홀에서 렉처 콘서트(Lecture & Concert)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다.

“요즘은 학교에서 음악적인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가정에서도 음악을 듣지 않죠. 베토벤 소나타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도 어려울 수 있어요. 어느 정도의 안내와 정보를 필요로 하죠. 연주자가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프로그램 북 속 해설보다 나을 겁니다. 연주 중 프로그램을 뒤적이느라 음악을 놓쳐선 안 됩니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쉬프는 “콩쿠르 출전을 멈춰라. 경쟁을 그만두라”며 “음악은 위대한 예술의 영역이다. 스포츠가 아니다. 속도와 힘, 스태미나와 정확도 등은 측정 가능하지만, 그건 스포츠다. 예술은 측정이 불가능한 요소들로 이루어졌고 고도의 주관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음악은 비교할 수 없다. 음악 콩쿠르가 불가능한 이유다”라고 주장했다.
쉬프는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4위에 올랐고 1975년 리즈 콩쿠르에서 파스칼 드봐용과 공동 3위에 입상한 바 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자유와 즉흥의 힘을 강조하거나 콩쿠르를 멈추라는 충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쉬프 정도의 대가가 하는 말이니 귀 기울이게 된다. 쉬프의 이름과 더불어 ‘바흐・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이라는 클래식음악 작곡계의 슈퍼스타들의 이름만을 떠올리며 객석에 앉아보자. 그의 손끝에서 어떤 곡이 나올까. 좋아하는 그 곡일까, 새로운 발견일까. 미지의 프로그램이 시작 전부터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공연이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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