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경찰조서 엉터리 많다|교통법률센터·서울 YMCA등에 진정·상담 잇따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교통사고가 급증하면서 교통사고 책임소재규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찰의 사고현장 수사기록인 경찰조서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올해 1월 문을 연 아-태 변호사협의회 산하 교통법률센터 무료법률상담소에 접수된 상담사례는 11월초 현재 약 3천 건에 달하고 있는데 이중20%인 6백 건 정도가 교통사고수사과정에서 작성된 경찰조서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들이다.
서울YMCA 시민중계 실에도 연 1천건 정도의 교통사고 관련 상담이 접수되는데 이중 10%인 1백여 건이 경찰수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통법률센터의 경우 불만사례들을 접수한 후 상담자의 주장이 사실인가 현장조사를 통해 알아보고 수긍이 가면 사건관할 지방검찰청에 경찰수사에 이의를 진정하는 방법을 주로 채택하고 있다.
서울지방검찰청의 경우 이같은 민원들을 89년 2백65건 접수했다. 검찰 계 진정담당 이치근씨는『재 수사결과 그중 35%정도가 경찰의 초동수사결과와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서울시경찰국 민원실에도 경찰수사로 인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89년에 접수된 9백1건 중 재 수사에 착수한 것은 7백39건이며 이중 30%인 2백21건이 처음수사결과와 다르게 나타났다고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그러나 이같은 재 수사를 통해서도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교통사고전문가들의 견해.
교통법률센터 김대성 변호사는『재 수사를 의뢰해도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유력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 이미 나온 결과 쪽으로 기울어지기 심상』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교통사고 전문가들은 경찰조서에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에 대해 ▲일부 경찰의 편파적인 수사와 무지 ▲경찰의 업무 과중으로 인해 철저한 사고현장 수사부족 ▲목격자가 위협을 느끼거나 주변 상황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또는 어느 한쪽에 매수 당해 위증하는 경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지검 김태정 제2차장 검사는『교통사고 처리특례법 도입이후 중요법규 8개항(중앙선침범,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등) 위반여부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해가 크게 엇갈려 검찰에 일단 진정해 보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9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S씨(39·경기도 광명시)는『경찰이 가해자 말만 듣고 아버지가 사고당시 건널목을 무단 횡단했다고 주장했다. 그후 목격자가 나타나 가해자의 잘못임을 증언했으나 그 경찰서에서 관할지검에 송치한 사건관련 서류를 찾아보니 목격자 진술서는 빠져 있었다』며『가해자가족과 합의, 보상금을 탄 후 사건담당 순경이 전화를 걸어와 돈도 생겼으니 옷이나 한 벌 해 달라고 말했다』며 기막혀 했다.
교통사고를 많이 취급하는 신기남 변호사(주·신 법률사무소)는 경찰의 잘못된 수사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전히 뒤바뀐 사건을 최근 2건 처리했으나 목격자가 매수 당해 위증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건을 뒤집지 못하는 예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신변호사는 교통사고 피해자의 이같은 억울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부 사건수사 경찰관이 정직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야 하며 일부 경찰관의 무지에서 올 수 있는 부당한 수사를 막기 위해 담당 경찰의 자질향상과 전문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경찰이 업무 과중으로 인해 현장수사를 게을리 하고 특히 피해자가 사망했을 경우 가해자의 진술에 주로 의존하는 경우 목격자로서 위증을 서슴지 않는 풍토도 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통법률센터 김대성 변호사는 교통사고 원인분석을 보다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사고조사장비의 현대화, 경찰이나 검찰 또는 사고당사자들이 현장조사를 의뢰하는 사설교통사고 원인분석단체들의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혜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