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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모자 사망의 반전..."며칠전 준비" 남편의 계획범죄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도 광명의 한 아파트에서 모자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광명 일가족 사망 사건’은 최초 신고자인 남편의 계획범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경기 광명경찰서는 40대 A씨를 살인 등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A씨는 전날 밤, 자신의 집인 광명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의 아내인 B씨(43)와 아들 중학생 C군(16), 초등학생 D군(11)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A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던 경찰은 26일 범행 현장 인근 물가에 버려진 흉기와 A씨의 옷가지를 발견하고 추궁한 끝에 A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며칠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26일 엄마와 아들 2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광명의 한 아파트. 이병준 기자

26일 엄마와 아들 2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광명의 한 아파트. 이병준 기자

CCTV 피해 15층 계단 올랐다 

 경찰은 A씨가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아파트 입구 폐쇄회로(CC)TV에 일부러 찍히는 등 알리바이를 만들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로써 범행 추정 시각은 25일 오후 8시 10~20분인데, 경찰에 따르면 아파트를 나서는 A씨의 모습이 아파트 입구 CCTV에 찍힌 건 이날 오후 7시 51분쯤이었다. A씨가 다시 아파트에 돌아오는 모습이 찍힌 건 약 3시간 반 뒤인 오후 11시 23분. 경찰 관계자는 “CCTV가 없는 1층 사각지대 복도 창문을 통해 A씨가 집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범행 전부터 범행 사실을 숨기기 위한 계획을 짜 실행했다는 거다.

해당 아파트 뒤편엔 건물 지하 1층~지상 1층 사이의 층계참으로 연결되는 창문(왼쪽)이 있다. 경찰은 이 창문을 통해 A씨가 CCTV를 피해 범행 현장을 오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서인 기자

해당 아파트 뒤편엔 건물 지하 1층~지상 1층 사이의 층계참으로 연결되는 창문(왼쪽)이 있다. 경찰은 이 창문을 통해 A씨가 CCTV를 피해 범행 현장을 오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서인 기자

실제로 이 아파트 뒤편엔 지하 1층~지상 1층 사이의 층계참(층계와 층계 사이 넓은 공간)과 연결되는 창문이 있었다. 창문이 무릎 높이에 있고, 세로로 긴 형태라 성인 남성이 열고 지나가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경찰은 엘리베이터 안 CCTV에 A씨의 모습이 찍히지 않은 걸 보고, A씨가 범행 전후 계단을 이용해 범행 장소인 15층 자택을 오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CCTV 영상에서 A씨가 아파트를 나설 당시 흉기와 함께 발견된 옷을 입고 있었고, 집으로 돌아올 땐 다른 옷을 입고 있었던 것 역시 경찰의 의심을 자극한 요인이다.

경찰·소방 출동했지만…이미 심정지

A씨는 25일 범행을 저지른 뒤 집 근처 PC방을 찾았다. 사진 독자

A씨는 25일 범행을 저지른 뒤 집 근처 PC방을 찾았다. 사진 독자

 경찰은 A씨가 집 안에 아들들만 있는 틈을 노린 것으로 파악됐다. 덩치가 큰 큰아들을 가장먼저 공격한 A씨는 이어 화장실에서 소리를 듣고 나온 작은아들을 살해했고 마지막으로 뒤늦게 집에 들어온 아내 B씨를 공격했다고 한다. 범행은 모두 거실에서 이뤄졌다. 범행 후 A씨는 오후 9시쯤 인근 PC방에서 2시간가량 시간을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A씨를 목격했던 PC방 직원은 “머리가 다 젖어있고 얼굴이 상기된 상태였다”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PC방에서 돌아온 A씨는 오후 11시 27분쯤 “아이들이 죽어있는 것 같다”며 119에 신고했다. 7분 후 경찰과 구급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B씨와 아이들은 이미 과다출혈로 심정지 상태였다고 한다. 26일에도 기자가 찾은 해당 아파트 앞 복도에 피 묻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을 정도였다. B씨 등의 시신에선 흉기에 여러 차례 찔린 상처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두부 손상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부검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현장 앞 복도에 피 묻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병준 기자

사건 현장 앞 복도에 피 묻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병준 기자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시어머니를, 아들들은 나를 무시한다고 느껴 범행을 결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A씨는 건강 등의 이유로 약 1년 전 실직해 무직 상태였고, 아내 B씨가 홀로 일을 하며 가계를 책임졌다고 한다. 같은 동 주민 70대 강모씨는 “B씨는 착하고 차분해 보이는 사람이었다”며 “얼마 전에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고개를 피했다. 지금 생각하니 표정이 어두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씨 가족을 잘 알고 지냈다는 한 이웃 주민 조모 씨도 “옛날엔 안 그랬는데, 한두 달 전에 마주치니 A씨가 내가 기르던 개들에 ‘똥개 같은 XX들이 짖는다’고 막 뭐라 했다”며 “좀 이상해 보였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최근 A씨가 담배를 피우던 미성년자를 상대로 방망이를 휘둘렀다고도 전했다. 경찰은 A씨의 정신 병력 등도 조사하고 있다.

이웃 40대 서모 씨는 “큰 아이는 차분하고 얌전했다. 크게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다”며 “인사성도 발랐다”고 했다. 조씨도 “아이들은 인사성 밝고 착했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했다”며 “(소식을 듣고) 심장이 벌렁벌렁하다”고 말했다.

A씨는 강력 범죄 전과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와 피해자들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고 이르면 오늘 구속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26일 오후 유치장이 있는 경기 시흥경찰서로 A씨를 이송했다. A씨는 이송되는 과정에서 “범행을 계획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네”라며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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