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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규제지역, 목적·역할 이미 상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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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호 30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특정 지역의 집값이 상승하면 그 지역만 콕 찍어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불리는 규제지역 지정이다. 규제지역으로 묶이면 집을 살 때 대출 받기가 어려워지고, 세금이 무거워진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규제지역을 주택 투기를 몰아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자 해당 지역만 정밀 폭격할 수 있는 스마트 폭탄이라고 선전했다. 집값이 오르면 가차 없이 정밀 타격하겠다는 경고였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서울과 경기도 일부, 부산·세종시에 머물렀던 규제지역은 문 정부 말 강원·제주를 제외한 15개 광역자치단체, 111곳으로 급증했다. 행정구역상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절반가량을 규제지역으로 묶은 것이다. 면적으로는 8800㎢로, 우리 국토의 8.8% 수준이다. 이곳에 우리 국민 70.1%인 3632만7710명이 산다. 문 정부가 이 같은 정밀 폭격 무기를 수시로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를 열어 지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정심은 보통 6개월에 한 번씩 열리지만 비(非)정기적으로도 개최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회에서 야당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시장을 옥죌 수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부동산 규제를 해제해 시장을 ‘정상화’하겠다고 했을 때 시장에서는 첫 손에 규제지역 해제를 꼽았다. 거대 야당이 버티고 있는 국회 벽을 넘지 않고도 마음만 먹으면 문 정부가 쳐 놓은 규제 그물을 상당 부분 걷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 전국 절반 지정
풍선효과 부추겨 거래단절 주범

규제지역을 해제하면, 정확히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되면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 금지 규제가 사라지게 된다. 조정대상지역에서 풀리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비롯해 종합부동산세와 취득세 중과 규제가 풀린다. 문 정부가 쳐 놓은 규제 그물은 이 외에도 많이 있지만, 어쨌든 규제지역을 해제하는 것만으로도 시장 정상화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6월과 9월 주정심을 열고 지방 규제지역을 대부분 해제했다. 현재 세종시를 제외하면 지방의 조정대상지역은 모두 해제됐고, 동두천·양주·평택 등 수도권 외곽 지역 5곳도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했다.

인천은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하는 대신 조정대상지역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공급 계획을 세운 뒤, 서둘러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의 규제지역도 해제해야 한다. 공급 대신 주택 수요의 시장 진입을 막아 시장을 왜곡한 주범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집값이 하락할 때는 ‘거래단절’만 부추긴다. 정부는 서울·수도권은 여전히 유동성이 많고, 청약 경쟁률이 높아 규제지역을 해제하면 집값이 다시 들썩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시적으로 급매물이 팔려 나가면서 집값이 오른 듯 보일 수 있겠지만,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에 규제지역을 해제한다고 매수세가 늘긴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정책에 따른 집값 반응·변동성이 약한 지금이야말로 좋은 시점이다.

규제지역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해 보인다. 규제지역은 집값 급등을 막는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문 정부 5년 내내 오히려 주변 지역 집값을 밀어 올리는 풍선효과만 부추겼다. 시장에선 “정부가 투자할 곳을 찍어 주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고,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느는 ‘베블런 효과’도 막지 못했다. 사실 이 같은 부작용은 노무현 정부가 2002년 투기과열지구라는 규제 카드를 처음 꺼냈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노 정부는 2006년 버블세븐(서울 양천·서초·강남·송파구, 안양 평촌, 성남 분당, 용인 수지)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지만, 집값은 잡지 못하고 풍선효과만 양산해 실패한 대책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를 문 정부가 고스란히 답습한 것뿐이다. 제도의 목적과 역할을 상실한 만큼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 되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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