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온라인 사업 비결은 … 아하 '긴 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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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CD음반을 가장 많이 파는 곳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전문 음반 판매점이 아니라 공룡 할인점 월마트다. 미국 음반 판매액의 5분의 1이 월마트에서 팔린다. 그러나 월마트 매장에 진열된 CD음반은 4500종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나온 수백만종의 음반 가운데 1%도 안되는 분량이 매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진열대에 세우는 기준은 인기도다. 한정된 공간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올리자니 자연히 잘 팔릴만한 히트음반을 위주로 진열한다. 물론 안 팔리는 음반은 퇴장이다. 또 진열됐다고 다 팔리는 것도 아니다. 매출상위 200종의 앨범이 전체 음반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극단적인 양극화의 양상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미국의 음악 다운로드 유료 사이트인 랩소디는 150만곡 이상을 서비스한다. 선택의 폭이 월마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물론 여기서도 히트곡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월간 접속횟수를 순서대로 그려보면 히트곡에 몰린 접속횟수가 급격히 떨어져 비인기곡으로 갈수록 가늘고 긴 꼬리 모양을 나타낸다. 상위 5000번째 아래로는 아예 그래프가 바닥에 딱 붙어 전혀 내려받은 실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꼬리 부분에서도 적지만 꾸준히 접속이 이루어진다. 5000번째부터 10만 번째 곡에 이르기까지의 매출을 다 합치면 전체의 4분의 1이나 된다. 그 뒤부터는 음반 전문점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곡들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내려받기 수요는 계속된다. 10만번째부터 80만번째까지의 매출이 전체의 15%를 넘는다. 그야말로 티끌 모아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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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와 랩소디의 차이는 바로 이 '긴 꼬리(The Long Tail)'에 있다. 오프라인의 대표격인 월마트는 인기있는 4500종을 제외하고는 꼬리를 싹둑 잘랐다. 여기서 소비자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반면에 랩소디는 꼬리를 살렸다. 월마트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꼬리 부분에서만 매출의 40% 이상을 올리고 있으니 정녕 무시할 수 없는 '꼬리의 힘'이다.

미국의 IT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은 그동안 오프라인 사업자들이 무시했던 '꼬리'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찾았다. 수요가 아무리 작더라도 합치면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상위 20%의 인기품목이 매출의 80%를 올린다는, 이른바 파레토 법칙을 뒤짚는다. 우선 인기 없다는 나머지 80%의 상품도 최소한 20%의 매출은 올린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말 것이며, 나아가 틈새시장을 잘만 파고들면 엄청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제시된 '롱테일'의 성공 사례는 대부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랩소디가 꼬리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은 매장이라는 물리적.공간적 제약을 벗어났기에 가능했다. 오프라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분량의 음악을 인터넷상에서는 거의 추가비용 없이 무한대로 서비스할 수 있다. 미국 최대의 서점 체인인 보더스가 매장당 10만 종의 책을 비치한 반면 전시공간이 필요없는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370만 종의 도서를 판매한다. 오프라인 DVD대여점인 블록버스터가 매장당 3000편의 DVD를 보유한 반면, 온라인 대여점인 넷플릭스의 대여목록에는 5만5000편이 올라있다.

인터넷상에서는 인기 품목이나 비인기 품목이나 비용의 차이가 없고, 재고 부담도 거의 없다. 또 인터넷 검색기술의 발달은 무수히 널려있는 틈새시장과 상품.정보.서비스를 신속하고 간편하게 찾아낼 수 있도록 했다. 롱테일 비즈니스가 꼬리 부분의 마지막 소비자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 이유다.

그러나 '롱테일'이라고 제법 새로운 이름을 붙였지만, 그 바탕은 솔직히 기존의 '다품종 소량 생산'이나 '맞춤형 서비스'가 지향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새로운 경제이론이나 법칙이라 믿기보다는 신조어(新造語)의 매력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또 저자는 롱테일이 오프라인에서도 통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인터넷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경우 과연 얼마나 유효할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온라인 사업의 성공사례를 유형화하고, 인터넷을 매개로 소비자가 주도하는 다양한 틈새시장이 나타나고 있다는 흐름을 꿰뚫어 본 만큼 미래 시장을 현상을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가 될 만하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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