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너마저… 탄핵 때 흘린 눈물 다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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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열린우리당 창당의 핵심주역 '천(천정배).신(신기남).정(정동영)' 중 한 사람인 신기남 의원이 지난 달 29일 천정배 의원 통합신당 추진 공식선언에 참여를 요청받고도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기남 의원은 17일 발매된 <월간중앙> 12월호 단독 인터뷰에서 "천 의원이 기자회견 전 나를 찾아와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면서 "하지만 그 제의에 나는 '천정배 너마저…'식의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털어놨다.

신기남 의원의 이 발언은 최근 열린우리당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통합신당 추진에 반대의사를 분명히한 것이서 주목된다

신기남 의원은 이 인터뷰에서 "천정배 의원과는 지금까지 모든 정치적 판단과 행보를 천 의원과 같이 했지만 이번처럼 특정지역 .인물을 중심으로 한 원칙도 명분도 없는 통합 주장에는 동조할 수 없었다"고 전제, "나는 슬프고 외롭지만 열린우리당 지킴이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천 의원의 결정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며 다만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훼손하는 발언을 하지 말 것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비난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두 가지 사실을 천 의원에게 간곡히 당부했으며 이에 천 의원도 공감을 표했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특히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에 대해서 열린우리당의 통합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민주당을 왜 깨고 나왔는지 벌써 잊어버렸는가?"라고 반문하며 "도로 민주당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 전 총리에 대해 신기남 의원은 "경륜은 훌륭하나 정체성과 노선이 보수적이고, 우리당의 창당정신과는 어울릴 수 없는 분으로 단지 현재의 지지율이 높다고 함께 할 수는 없다"고 평가하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는 "고 전 총리는 누가 뭐래도 참여정부에서 오랫동안 총리를 했던 분으로 이제 와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거나, 내 상관할 바 없다는 식의 발언과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실패론'과 '실험론'에 대해서 "이는 패배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신당 창당을 위한 명분 쌓기일 뿐"이라고 규정하고 "열린우리당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거두었으며 여전히 창당과정에 있는 가능성 과 가치를 가진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바닥인 이유에 대해 신 의원은 "진보개혁의 이념과 노선을 지키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등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서민정당을 표방했으나 오히려 한나라당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결과적으로 서민 삶의 질 향상에 실패해 서민들과 진보개혁 세력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신 의원은 또 "우리당은 한나라당부터 민주노동당이 다 들어있을 정도로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다보니 진보개혁이라는 당의 '코어정신'을 살릴 수 없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다음은 신기남 의원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

-지난 10월29일 천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통합신당 창당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신당 창당에 앞장서겠다고 했고요. 또 과거 민주당과 갈라섰던 것에 대한 유감 표명도 했습니다. 통합신당으로 나가자는 깃발을 공식적으로 올린 셈인데 당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언젠가 정동영 전 의장이 우리당이 실패했다는 뉘앙스로 말했을 때 상당히 놀라고 충격받았어요. 그런데 막상 천 의원마저 그런 말을 하면서 창당선언을 해 더 큰 충격을 받았지요. 가슴 한구석이 무너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거요. 안타깝고, 서글프고, 외롭다고 할까요? 마음이 아려 오더군요. 아니 '천정배 너마저…'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듭디다."

-기자회견 전에 천 의원과 서로 의견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나를 찾아와 상의했지요. 천 의원은 나와 뜻이 잘 맞는 사람이고, 그동안 진정한 동료로 잘해 왔기 때문에 믿고 의지하는 사이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서로 판단이 다를 수 있고, 가는 길이 틀릴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당으로는 어렵다며 신당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만류도 하고 좀 기다려 보자고도 했죠. 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은 우리 스스로 강해지고 재정비하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온다는 말을 내가 했어요. 3년 만에 우리 뜻을 꺾고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다고 했죠."

-천 의원은 뭐라고 말하던가요?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합디다. 내 입장을 이해하지만 천 의원 본인도 나름대로 고민한 바가 있을 테니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겠죠.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말린다고 됩니까? 또 천 의원도 마찬가지로 나를 설득할 수 없었고요."

-우리당 창당 주역 중 한 사람인 천 의원이 또 다른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아무래도 천 의원은 호남 출신이다 보니 걱정되고 불안하고 또 복잡한 여러 생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이 다르고, 설득이 안 된다고 사선을 여러 번 함께 넘은 동지를 비난할 수는 없지요. 이해하는 측면이 있지요. 천 의원도 요즘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입니다. 막상 우리당으로는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신당창당 공표를 하기는 했지만 만감이 교차할 거예요. 또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고…. 나는 '우리가 헤어질 수 있느냐? 같이 가자'고 기회 있을 때마다 권유하려고 해요. 물론 천 의원도 나에 대해 마찬가지겠죠."

-천 의원을 이해하신다면 그 뜻을 따라줄 수도 있는 것 아니었는지요?

"이해하는 것과 내 소신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천정배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말리고 설득해 돌이키게 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내 길을 바꿀 수도 없었어요. 그동안은 같은 길을 갔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열린우리당) 지킴이 해야겠더라고요. 열린우리당 창당한다고 큰 모험을 하고 어렵고 살벌한 판에 당의 이념과 노선을 세우면서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 있는데 그걸 버릴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치 뭐하러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서로 다른 길을 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천 의원에게 따로 부탁하거나 당부한 말은 없었나요?

"'좋다. 상황이 이런데 어쩔 수 없지 않으냐. 하지만 두 가지만 간곡하게 부탁한다'고 했어요. 민주당과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그 길로 가더라도 우리가 했던 창당의 의미와 가치를 소급해 훼손하는 태도는 보이지 말아달라는 것이 첫 번째 부탁이었어요. 아직도 우리를 지지하는 국민과 당원이 있으니 그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랬더니 자기도 그것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더군요. 최근에 우리당의 창당정신과 공과를 다 안고 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 번째는 노 대통령을 욕하지 말라고 했어요. 현 상황의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전가하는 말은 보기에 안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은 치사한 것 아닙니까?"

-노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를 따로 당부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친노파(親盧派)'여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친노파가 아니에요. 나를 창당의 주역이라고 하면서 또 친노파라고 하면 그것은 사실관계도 모를 뿐더러 나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요즘 정계개편의 논의를 친노.반노의 기준과 구도로 바라보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지금까지도 반대하고 있고요. 그러나 어찌 됐든 대통령과 함께해온 여당 아닙니까? 대통령과 정부를 당이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참여정부만 잘못해 이렇게 된 것이 아니잖습니까? 더구나 당 지도부에 있던 분들이 정부에 들어가 장관도 하고 했는데 '노 대통령이 잘못했다. 그래서 배척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신 의원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실패론과 실험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했다.

"열린우리당은 실패한 것이 아니에요. 또 실험을 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당은 여전히 창당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개혁정당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역사적으로도 개혁은 원래 가시밭길이었어요. 더구나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자고 했는데 그게 어디 짧은 시간에 될 일입니까? 성공한 부분도 있고 실패한 부분도 있어요. 저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부릅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했는데, 성공한 것, 실패한 것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치 틀의 개혁에서는 성과가 많았어요. 열린우리당이 태어나면서 우리나라 정치구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정치하는 관행법이 바뀌었어요. 또 세대교체가 완전히 돼버렸죠. 이런 것들은 굉장한 성과로 3년 전 정당과는 다른 모습이죠. 그러면 무엇에 실패했느냐? 바로 정치의 내용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채우지 못한 정치의 내용은 뭐죠?

"우리가 국민에게 다짐했던 것, 또 국민이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을 많이 채우지 못했어요. 아울러 노선과 정책에서 우리가 다짐했던 것과 국민이 기대했던 것이 심히 빗나간 것도 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정책의 방향이 '진보적' 노선을 놓치고 '보수적'으로 흘러버렸던 것이죠. 즉, 서민의 삶의 질을 거의 방치하고 방기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서민들로부터 배척받는 정당이 되고 말았어요. 이것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심지어 굉장히 우경화돼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잖아요? 우리를 지지했던 진보 개혁층의 지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지지율 저하의 주원인입니다. 창당정신과도 어긋났고요. 보수층이 우리를 찍어준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를 지지하는 것은 진보개혁세력 아닙니까?"

-정치의 내용도 못 채운 채 우경화로 흐른 원인은 무엇입니까?

"어려웠던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집권여당은 그런 것도 극복해야죠. 문제는 우리의 능력.역량.경륜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우리당 의원의 66%가 초선의원이었으니까요. 중진으로 분류되는 저만 해도 옛날 선배들에 비하면 경륜이 일천하지 않습니까? 최근 들어서야 조금은 성숙해져서 제대로 정치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시는 아니었죠."

-능력도 문제였지만 구조적으로 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은 점이 종종 지적되지 않았습니까?

"창당 초기만 해도 당이 뜨지 않다 총선을 불과 3 ̄4개월 앞두고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해 막판에 인원이 확 몰려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당에는 보수 성향부터 진보 성향까지 구성원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당 속에는 한나라당부터 민노당까지 다 들어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도 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코어 그룹'의 '코어사상'(진보개혁이념과 서민 삶의 향상 추구)은 있는 것이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내고 추구해야 했습니다. 그것을 못한 것이죠."

-통합신당 논의에 대해 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왜 그처럼 고집스럽게 반대하십니까?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합시다. 지금의 통합신당 논의는 민주당과 합당하고 고 건 전 총리 쪽을 불러들여 합치자는 것 아닙니까? 또 누가 있습니까? 과연 민주당이 합당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왜 민주당을 깨고 나왔습니까? 벌써 잊어버렸다는 말입니까? 예전에 뿌리가 같았다는 것인데, 현재 우리와 민주당은 전혀 추구하는 사상이 달라요. 민주당이야말로 지역주의 정당 아닙니까? 통합은 지역이나 지지율이 좀 높은 특정 인물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개혁의 가치를 같이하는 민주개혁세력과의 연대여야지요."

-고 건 전 총리 쪽과의 통합도 반대하신다는 것입니까?

"고 전 총리는 경력으로 말하면 더 없이 훌륭한 분이죠. 그런데 이분의 정체성과 노선은 도대체 뭡니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는 것이 아니고 상당히 보수적이죠. 최근 이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뭐 대북관이라든지,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에 대한 생각이라든지, 우리당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또 한 가지 문제는 그래도 노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한 분인데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현 상황에 대해 함께 반성하고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 아닙니까? 자신은 책임이 없고, 또 '오불관언(吾不關焉; 내 간여할 바가 아니다)'이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고 전 총리의 경우 현재 한나라당 후보들에 대항할 범여권 인사 중에서는 지지율이 가장 높지 않습니까?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높다는 것이 통합 대상이 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이 지지율이라는 것은 이인제 의원이나 노 대통령의 과거 경우를 봤겠지만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한 개인의 지지율보다 어떤 집단, 어떤 정당, 어떤 세력과 같이 통합된 지지율이 중요하지요. 이게 무슨 인기 가수 순위 차트 만드는 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언론이 지지율 조사해 발표하는 것도 또 이해할 수 있어요. 언론 입장에서는 재미있고 흥밋거리가 되니까 하라고 하세요.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지지율에 일희일비하고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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