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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여성>기각장애인에 「사랑의 책」제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읽을 책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15만 시각장애인들의 절실한 안타까움을 덜어보려고 애쓰는 여성이 있다. 일반인들이 읽는 묵자를 점자로 바꾸는 일을 9년째 계속해오고 있는 이혜영씨(52·주부·서울 예양동 1의57)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점자의 문외한이던 이씨가 점역 봉사와 질긴 인연을 맺게된 것은 82년 서울 YWCA가 실시한 강습에 참가하면서부터. 『지체장애인 가운데 가장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여기고 있던 그는 점역 수강생을 모집한다는데 「눈이 번쩍 띄어」 바로 수강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1백여명이 강습에 참가했으나 수료자는 40여명으로 줄어들 만큼 결코 쉽지 않은 3개월간의 점자 학습을 마쳤다. 그는 함께 수료했던 1기생들과 함께 점역회를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읽을 거리를 계속 제공해 주자는데 뜻을 모았다.
전8권으로 된 『10단계 성서』와 대학교재인 『한국의 교육사』등에서 현재 번역중인 소설 『이조의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찍은 점자도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저녁식사 설거지를 끝낸 다음 잠자리에 들기까지가 그 소중한 작업시간·점자용 특수지에 구멍을 뚫기 위해 힘을 주어 타자를 쳐야하기 때문에 하루 10페이지 이상을 하기는 무리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래도 지금은 조건이 좋은 편입니다. 5년전까지만 해도 점판에 점필을 가지고 일일이 수 작업을 해야했거든요. 숙원이던 점자타자기가 생긴 다음 일이 훨씬 수월해진데다 서울 회신동 성도교회에서 점역회에 복사기도 기증해주어 더 많이 보급할 수 있게 뵀거든요.』
그러나 그가 점역에 몰두한 만큼 건강은 많이 나빠져 점자를 찍기 시작한지 3년째에 돋보기를 걸쳐야 했다. 뿐만 아니라 목 디스크에 걸러 두 번씩이나 입원을 했고, 오른쪽 손마디에 관절염을 앓아 고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점자를 찍는다니까 집안 어른들이 왜 하필이면 시각장애인을 돕느냐며 싫어 하셨어요. 재수가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제일 불상한 사람을 돕는 것이 제일 복 많이 받는 일이라고 설득했더니 점차 이해를 해주셨어요.』
이제는 시끄러운 타자기 소리에도 가족 모두가 엄숙해져 불평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며 웃는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은 시각장애 고교생·대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재를 제대로 점역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 전문인이 아니어서 타자치는 속도가 늦는 데다 시간도 충분치 못하고 도표를 처리하는 방법도 몰라 역부족이라고 씁쓸해한다.
장애인 부모들이 자녀를 스스로 차별대우하는 것도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 중의 하나. 어느 특수교육기관의 요청으로 점역 회원들이 수련장을 점역했는데 여름방학 전에 공부해야한다고 독촉하던 학부모들이 복사비 문제 때문에 방학이 끝나가도록 학생들 손에 수련장이 전달되지 않았던 일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조의 여인들』점역을 끝내면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완역해보겠다는 이씨는 점자도서 제본기를 마련, 완벽하게 점자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소망이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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