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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한 ‘남남 가족’ 100만명...패밀리 경계가 무너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혈연ㆍ법률혼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친구나 애인끼리 거주하는 '비(非)친족 가구원'이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이젠 추석 같은 명절 때 모이는 직계가족들만 정상 가족으로 인정하기 힘든 세상이 된 셈이다.

1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비친족 가구는 1년 전보다 11.6% 증가한 47만2660가구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비친족 가구는 시설 등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가구를 제외한 일반 가구 가운데,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를 의미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같이 살거나,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가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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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6만9444가구였던 비친족 가구는 2020년(42만3459가구) 40만 가구를 넘어서더니, 지난해 47만 가구를 돌파할 정도로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에 비친족 가구에 속한 가구원 수도 함께 늘었다. 지난해 비친족 가구원은 101만5100명으로,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2016년(58만3438명)과 비교하면 5년 만에 가구원 수가 74.0%나 급증한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학업, 취업, 생활양식 변화 등의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사람이 주거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가족이 아닌 이들과 집을 합치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결혼관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가족 부양의 부담이 큰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하는 연인들도 늘고 있다. 현행법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는 동성(同性) 부부도 있다. 핏줄을 나누거나 법률적으로 얽히진 않았지만, 함께 살며 경제적ㆍ감정적으로 교감하는 신(新)가족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만 18∼6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6명 이상(62.7%)은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 비혼ㆍ동거까지 확대하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 혼인ㆍ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ㆍ주거를 같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는 각각 87.0%ㆍ82.0%가 동의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걸맞은 법ㆍ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소득세 인적공제의 경우 호적상 배우자만 공제가 가능하며, 주택청약 특별공급 등도 법적 부부를 상정해 지원한다. 동거인은 부부에게 제공하는 자동차 보험 할인, 통신사 가족 할인 혜택도 제한된다. 병원 수술ㆍ장례 등 긴급한 상황에서도 동거인에겐 보호자로서 아무런 법률적 권한이 없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비혼ㆍ동거 가구, 위탁 가정, 서로 돌보며 생계를 함께하는 노인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가족 범위를 제한하는 민법 개정을 추진하고, 가족을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정의하는 건강가정기본법 조항도 손 볼 예정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족 다양성의 현실과 정책 과제’라는 현안분석 보고서에서 “먼 거리에 거주하고 서로의 왕래가 드문 가족, 법적 서류 관계로만 존재할 뿐 이미 단절된 가족이 있는 반면, ‘가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떠한 법률 근거를 가지지 못하지만 보살핌과 친밀성을 나누는 자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고 밝혔다. 허 조사관은 “다양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민법 제799조의 가족 범주,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의 가족 정의에 생계를 함께하고 있는 동거인, 그리고 가족과도 같은 친밀한 자의 개념을 포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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