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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100년 뒤에도 국민연금 줄 수있는 개혁안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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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4차례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남긴 것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의 출발을 알리는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첫 회의가 지난달 30일 열렸다. 재정추계 전문위와 함께 운영되는 기금운용발전 전문위가 재정계산 기초 논의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후 구성되는 재정계산위에서 재정 안정 방안 등 국민연금 개편 방향을 결정한다. 한시가 급한 재정계산을 위해 재정추계 전문위가 먼저 출범한 것이다.

필자는 2003년 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부터 2018년 4차 재정계산까지 모두 참여했다. 4차례 재정계산에서 필자가 담당한 분야는 모두 재정 안정 방안이었다. 연금 재정 안정을 달성해야 취약계층에게 최소한의 노후소득이라도 보장해 줄 여력이 생겨난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이러다 보니 재정 안정만 강조하지, 적절한 연금 급여 수준은 소홀히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 국민연금 재정추계 기간은 70년, 일본 100년보다 짧아
보험료 수입은 모두 잡히나 미래 연금 지출액은 대거 빠져
낙관적 전망은 국민연금 현실 외면하며 재정 더 악화시켜
OECD 국가 70%가 도입한 연금재정 자동안정장치 서둘러야


독일·일본 등 자동안정장치 도입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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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900조원의 적립금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정만을 강조하는 ‘공포 마케팅의 주창자’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안정된 재정 기반을 통해 세대에 걸쳐 소득 보장을 공고히 하려 했음에도 국민연금 가입자를 불안하게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연금 논의가 왜 이렇게 말꼬리 잡는 논의로 전락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2003년 1차 재정계산에서는 연금 개편 방향을 결정하는 국민연금발전위 산하에 제도발전 전문위와 재정추계 전문위가 있었다. 당시 필자는 제도발전 전문위 간사로 재정 추계 기간을 70년으로 잡고, 재정 안정 지표로 재정 추계가 끝나는 2073년 말 적립 배율을 2배로 만든다는 재정 평가 기준 설정을 조율하였다. 개인적으로는 80년을 선호하였으나, 위원 다수의 반대로 70년 재정 추계 기간에 합의했다.

재정 안정을 강조하던 필자와 KDI 문형표 박사(전 보건복지부 장관)는 1998년 스웨덴의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참고하여, 2008년 2차 재정계산에서는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추진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우리가 국민연금을 배워온 독일·일본도 2004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매년 재정 절약적 조정이 자동으로 취해지는 연금제도 운용 방식이다. 정치적 판단을 배제함으로써 제도 개혁에 드는 소모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2차 재정계산에서 재정 안정 방안을 담당했던 필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주장했다. 최종 회의가 경기도 양평에서 1박 2일간 진행되었다. 2007년 7월 국민연금 재정안정조치가 통과된 다음 해이다 보니, 연금개혁 동력 확보가 어려운 시점이었다. 이번 재정계산에서는 한 템포 쉬어가자는 입장이 대세였다. 상황이 그러하니 다음 3차 재정계산에서 자동안정장치 논의를 제대로 하자는 내용을 보고서에 포함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마지 못해 필자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

그런데 정작 2013년 3차 재정계산에 가서는 방향이 대폭 바뀌었다. 연금 재정 담당 위원이 복수로 선정되었다. 필자처럼 재정 안정을 강조하는 위원과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면 부과 방식으로 전환해 세금으로 조달하자는 위원으로 이원화시켜 논의가 진행되었다. 전문가가 단일 대오를 형성해도 정치권에서 비토당하는 현실에서, 위원회에서조차 단일안을 만들지 못하도록 논의 구조가 바뀐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위원회에서 몇 번의 논의 끝에 자동안정장치 도입이 거부됐다.

보험료 찔끔 올리고 지급액 더 올려

2018년 4차 재정계산은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위원회 초기 다수 위원으로부터 거부당한 것은 약과다. 지난 3차례 재정계산 과정에서 채택했던 재정안정화 조치 기간을 7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한 재정 안정 방안이 등장했다. 이럴 경우, 30년 뒤인 2048년까지는 기금이 소진되지 않는다. 기금 소진은 당시 2057년으로 전망됐다. 본심은 공적연금 강화란 명목으로, 보험료는 3.3%포인트만 올리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포인트 더 올리려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재정안정화 조치 기간을 30년으로 설정하려면, 재정 추계 기간을 80~90년으로 기존보다 10~20년 더 연장하는 안도 위원회 안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요구를 한 이유는 공적연금 추계 기간을 무한 기간까지 연장해야 제도에 내재한 문제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추계 기간의 문제점은 국민연금 가입자 보험료 수입은 모두 집계되나, 미래 연금 지출액은 모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70년 재정 추계 기간의 보험료 수입액은 모두 잡히나, 미래 지급할 연금 지출액의 상당 부분이 누락돼 낙관적 재정 추계가 이루어진다.

격렬한 논의 끝에 4차 재정계산에서는 복수의 재정 안정 방안이 제시되었다. 30년을 재정안정화 조치 기간으로 설정하여 재정 안정 방안을 제시한 ‘가’안이 재정계산 역사상 처음 등장했다. 70년 재정 평가 기간을 적용한 재정 안정 방안인 ‘나’ 안은 두 번째 안으로 제시되었다. ‘나’ 안은 재정 안정 달성에 필요한 보험료율인 17.2%까지 인상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보험료율은 13.5%로 4.5%포인트만 올리고, 핀란드식의 기대수명계수를 활용하는 방식이어서 자동안정장치 개념을 일부 포함한 안이었다.

보험료 20%로 올려야 지속 가능

그러나 2018년 복지부의 대통령 보고와 국회 제출안에서 ‘나’ 안은 배제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접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국 관계자들은 의아해했다.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세종시에서 필자와 재정 안정 방안을 논의하였던 OECD 사무국 고위 관계자들은 “왜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발전위에서 제시한 ‘나’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글로벌 연금 개혁 방향에 부합하는 ‘나’안이 배제된 걸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해결해야 할 논점을 정리해 보자. 우리가 채택한 재정 추계 기간 70년은 너무도 짧아 국민연금에 내재한 제반 문제점을 제대로 알려줄 수 없다. 최기홍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초빙연구위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민연금이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보험료를 11.2%포인트 더 올려야 한다.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인 9%의 2배가 넘는 20.2% 수준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지난 5년 동안 보험료 2~3%포인트 올리는 조건으로 국민연금 급여율을 더 올리겠다며 허송세월했다.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앞선 선결 기본 과제에서조차도 답보 상태였다.

저출산·고령화에도 연금 포퓰리즘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일본·캐나다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장기간의 재정 평가 기간을 채택하고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가 국민연금을 배워 온 일본 후생연금은 재정 평가 기간이 100년이고, 캐나다연금(CPP)은 150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그 시점까지 연금 지급할 돈을 확보하고 있다. 캐나다는 150년 뒤에도 지급할 돈 100%를 확보하고 있다. 연금기금은 아니나 미래 세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르웨이는 국부펀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00%를 확보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생률과 OECD 회원국에서도 노인 부양률이 가장 빠르게, 그것도 최악의 경우로 치달을 우리가, 수지 균형을 이룰 보험료 수준에 훨씬 미달하는 보험료를 내고 있다. 또 OECD 회원국의 70%가 도입한 연금재정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진지한 논의 자체를 하지 못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제대로 된 재정추계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극히 낙관적인 재정 전망으로 국민연금의 현주소를 보지 못하게 된 때문이 아닐까. 이번 5차 재정추계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빠르게 늘어난 평균수명이 연금 재정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10년 이상 재정추계기간을 연장한 재정추계 결과가 제시되어야 한다.

필자가 선호하는 재정추계 기간은 일본 후생연금과 동일한 100년이나, 당장 100년으로 30년 연장하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10년이라도 연장하여 2093년이 아닌, 2103년까지의 재정추계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연금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는 조치가 아닌가 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