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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윤의 퍼스펙티브

의료 질 좋으면서 비싸지 않은 병원 찾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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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어두컴컴한 백화점에서 쇼핑한다고 상상해보라. 상품의 질은 어떤지, 가격은 얼마인지 알기 어려우니 제대로 쇼핑을 할 도리가 없다. 현실에서 상품의 질과 가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선택을 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일은 마치 어두컴컴한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어느 병원과 의사가 실력이 있는지, 어느 병원이 병원비가 비싼 병원인지를 알 수 있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공개된 정보가 없으니 주변에 알음알음 물어 정보를 얻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돈에 팔촌이라도 집안에 의사나 간호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병에 맞는 병원이 어디인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정보가 없으니 경증 환자까지 대학병원으로 몰려들게 된다.

입원환자 사망률과 병원비 비교하면 합리적 병원 선택 가능
위암·심장병·뇌졸중 치료 상위 20위의 절반은 지방 대학병원
의료 질과 병원비 정보 공개해야 서울 대형병원 환자쏠림 막아
정부는 환자 본인부담금 올리기보다 정확한 병원 정보 제공해야

정말로 어느 병원이 내 병을 잘 치료할 수 있고, 어디가 병원비가 비싸지 않은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무려 20여 년 전부터 미국과 영국은 병원별 사망률을 포함한 의료 질과 질병 및 수술 별로 진료비를 공개해왔다. 이는 최근 독일·캐나다·호주로 퍼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모든 병·의원에 대한 정보와 모든 국민이 병·의원을 이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이 같은 정보를 더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안 만들고 있다.

국립대 병원, 가성비 높아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어느 병원이 사망률이 낮은 병원이고 병원비가 비싸지 않은 병원인지 알 수 있다. 중증 환자가 많으면 사망률이 올라가고 비싼 질병이나 수술이 많으면 병원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병원 간 비교를 위해서는 환자의 중증도와 질병과 수술의 구성을 보정해야 한다.

〈그림 1〉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림 1〉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연구 결과 상급종합병원 간에도 병원의 사망률과 병원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그림 1〉. 입원 환자 사망률이 낮은 3개 병원(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서울대병원)과 높은 3개 병원(삼성창원병원, 조선대병원, 계명대병원)의  사망률 차이는 2.2배나 되었다. 병원비가 싼 3개 병원(경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충북대병원)에 비해 비싼 3개 병원(경희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의 병원비 차이는 1.4배에 달했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의료 질이 좋은 병원은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같은 국립대 병원이 많았으나 강릉아산병원이나 원주세브란스병원 같은 사립대 병원도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은 병원비는 조금 비싸지만, 의료 질이 좋은 병원에 속했다. 이처럼 병원 간 사망률과 병원비에 큰 차이가 있는데도 아무 정보도 없이 치료받을 병원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쇼핑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표 1〉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표 1〉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내가 어느 병원 어느 의사에게 치료받을지 결정하려면 질병별 사망률과 병원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평균은 높아도 잘 못 하는 분야가 있고 반대로 평균이 낮아도 잘하는 분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암·급성심근경색·뇌졸중 등 질병별로 사망률이 낮은 상위 20개 병원을 분석해보면 병원마다 잘 치료하는 질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 1〉.

정보 공개해야 합리적 병원 선택 가능

상위 20위 병원의 약 절반은 지방 대학병원이었다. 어느 병원이 내 병을 잘 치료하는지 알 수 있으면 굳이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위암은 전남대병원·경북대병원·고신대병원의 사망률이 낮았고, 급성심근경색에서는 양산 부산대병원·경북대병원·충남대병원의 사망률이 낮았다. 뇌졸중에서는 충남대병원·전남대병원을 제외하고는 수도권 대학병원의 사망률이 전반적으로 낮았다.

〈표 2〉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표 2〉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급종합병원은 아니지만, 의료 질이 그에 못지않은 종합병원도 적지 않다. 큰 종합병원(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중 상급종합병원의 평균보다 사망률이 낮은 병원은 모두 18개였으며 이 중 5개는 지방 종합병원이었다.

이제는 병원의 의료 질과 병원비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첫째,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병원에서 어떤 의사에게 치료를 받을지 결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암이나 심장병과 같은 중증 질환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결정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환자들이 병원과 의사에 대한 정보 없이 이 같은 중대한 결정을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병원의 의료 질과 병원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수도권 대형병원 환자 쏠림을 막을 수 있다. 병원의 의료 질과 병원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면 경증 환자까지 이른바 빅5 병원을 포함한 대학병원에 몰려드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비급여·과잉 진료 줄이도록 유인

이들이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이유는 내 병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병인지, 대학병원이 아니라도 어느 병원이 내 병을 잘 치료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에 몰린다고 환자 본인부담금만 올릴 일이 아니라 경증 환자가 믿고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어느 병원인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병원들이 의료 질을 올리고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와 과잉 진료를 줄이도록 유인할 수 있다. 환자는 의료 질이 좋은 병원을 선택할 것이고 의료 질이 같다면 병원비가 비싸지 않은 병원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서 질이 낮고 병원비가 비싼 병원들은 다른 병원들에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환자의 중증도를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 자료만으로 완벽하게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환자들에게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보다는 정확도가 좀 떨어져도 병원의 의료 질과 병원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낫다. 환자 진단명의 정확도를 높이고 검사 결과를 수집하면 정확도를 크게 올릴 수 있다. 완벽한 정보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병원 사망률과 병원비, 어떻게 분석했나

병원 입원환자 사망률은 영국·캐나다·호주 등 국가에서 병원별 사망률을 산출·비교하는 ‘병원 수준 요약 사망 지표’(Summary Hospital-level Mortality Indicator)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입원환자를 임상적으로 비슷한 142개 질환군으로 구분한 후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인을 통계적인 방법을 통해 보정한 것이다.

위험 요인에는 성과 연령 이외에 동반 질환, 입원 경로, 수술 여부 등의 요인이 환자 사망에 미치는 영향을 보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병원별 중증도 보정 사망률을 평가한 결과를 각 병원에 제공하고 있으나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2013년~2017년 5년간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300병상 이상)에 입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중증도 보정 사망률을 산출하였다. 완벽하게 사망을 예측했을 때를 100이라고 했을 때 통계적인 모형의 정확도는 대략 80 내외로 외국과 비슷했다. 임종을 앞둔 호스피스 입원환자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 환자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병원별 진료비 산출은 미국에서 병원별 진료비를 비교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이는 환자 진료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만성질환을 연령과 성별로 유형화한 후 이들이 진료비를 증가시키는 정도를 정량화한 ‘계층적 질환군’(Hierarchical Condition Category)을 활용하여 중증도 보정 진료비를 산출하는 방법이다.

2017~2018년 2년간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중증도 보정 진료비를 산출하였다. 중증도 보정 진료비 모형의 설명력은 대략 40% 수준으로 미국 모형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병원별 건강보험 진료비와 함께 비급여 진료비 비중을 반영하여 전체 진료비를 산출하였다.

암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병원(화순전남대병원·국립암센터·원자력병원 등)과 2019년 신포괄진료비 지불제도 시범사업에 참여한 울산대병원은 다른 병원과 비교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서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입원환자 사망률은 직전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병원별 진료비는 현재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병원을 구분하였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