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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연금 증가, 임의가입 탈퇴…국민연금 줄이기 시작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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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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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어떡하든 국민연금을 늘려야 하는 게 지상명령에 가까웠다. 갑작스레 찾아온 고령화 시대를 넘기 위해 그나마 기댈 데가 연금밖에 없었다. 이런 신화가 건강보험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연금·임대·금융 등의 소득이 2000만~3400만원인 27만여 명(a)이 지난 1일 건보 피부양자에서 탈락했다. 이 중 공적연금(월 166만6700원 초과)만으로 탈락한 사람이 13만여 명(b)이다. 이들은 “정부·연금공단·언론기사의 권유에 따라 연금을 늘렸다가 오히려 건보료를 물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공적연금 탈락자 13만여 명 중 공무원연금 수령자가 약 11만 명, 군인·사학연금이 각각 약 1만1000명, 국민연금 2689명, 별정우체국연금 707명이다. 연금액이 높은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이 많다. 국민연금도 앞으로 장기 가입자나 고소득자가 늘면서 탈락자가 늘어나게 돼 있다. 나머지 탈락자 14만여 명(a-b) 중에도 공적연금이 연간 2000만원이 안 되지만 임대소득 등을 더해 이를 초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혜영 의원, 공단 연금자료 분석
건보개편 탓 연금축소 경향 확인
노후 소득보장 정책 악영향 우려
“피부양자 축소, 아직 시행 일러”

전업주부 추후 납부 주춤

이번 조치를 앞두고 국민연금 가입자가 이미 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6일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했더니 조기노령연금 증가, 임의(계속) 가입자 탈퇴 증가, 추후납부(추납) 주춤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모두 노후연금 액수를 줄이려는 시도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조기노령연금은 수령 개시 시기(만 62세)를 최대 5년 당기되 30%(연 6%) 깎아서 받는 제도이다. 50대 중반에 은퇴한 뒤 62세까지 소득 공백을 견디기 힘들면 조기연금을 신청한다. 일종의 독배이다. 조기연금 신규 수령자는 2019년 월평균 4467명까지 꾸준히 늘었다. 그러다 2020년 4324명, 지난해 3976명으로 줄었다.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1~6월 4829명으로 늘었다. 물론 이유가 피부양자 탈락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경기 악화 때문일 수도 있다.

만 60세가 되는 달부터 국민연금 가입 의무가 사라진다. 그래도 65세까지 임의로 보험료를 낼 수 있다. 대신 직장인의 경우 본인이 다 내야 한다. 그래도 임의계속가입자는 2017년 12월 34만5292명에서 지난해 12월 54만3120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7월 말 현재 52만6764명으로 떨어졌다. 중도 탈퇴자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전업주부 임의가입자도 줄었다. 지난해 말까지 5년 새 21% 늘었다. 올 7월 말에는 지난해 말보다 2.5% 줄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40, 50대 중년층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연금 재테크’는 추납이다. 과거 안 낸 보험료를 내 보험료 공백을 메운다. 그러면 마술처럼 연금액이 올라간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A(62)씨는 5월 8년 9개월 치 보험료 2056만원을 한꺼번에 추납했다. 국민연금을 월 150만원에서 173만원으로 올려 받고 있다. A씨가 건보 피부양자라면 이달 탈락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월평균 추납 신청자가 지난해 1만7417명에서 올해 1만3623명으로 줄었다. 추납을 활용해 국민연금을 늘려서 받고 있는 연금수령자는 60만6235명이다. 이 중 연간 연금액이 2000만원 넘는 사람이 2531명이다.

피부양자 탈락자는 지역가입자가 돼 연금소득에다 부동산·차에도 건보료를 낸다. 월평균 16만원이다. 다만 정부가 내년 10월까지 80%를 경감해 3만2000원만 낸다. 2026년까지 매년 경감률이 20% 낮아지고 그해 9월 전액을 내게 된다.

국민연금 측은 “왜 ‘건보료 유탄’에 우리가 악영향을 받아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미 복지부가 피부양자 탈락 사실을 통보해 건보공단·연금공단에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최혜영 의원은 “건보와 연금 정책 방향이 서로 맞지 않다 보니 연금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국민연금 가입자의 불만이 계속 커지고 있다”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관련 규정이 시행돼 당장 대책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피부양자 연금 절반만 반영하자”

건보 피부양자는 계속 축소해 왔다. 이번 조치도 2018년 건보료 부과체계 1단계 개편을 시행하기 전부터 이미 예정된 것으로 갑자기 시행하는 게 아니다. 피부양자는 ‘건보료 무임승차’를 해왔다. 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지부는 “비슷한 소득이 있지만, 직장인 자녀가 없는 지역가입자는 이미 적지 않은 건보료를 부담하고 있다”며 “능력에 따라 적정하게 부담하기 위한 조치이며 형평성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최혜영 의원실의 박상현 보좌관은 “피부양자 축소 방향은 맞다. 다만 국민연금이 아직 성숙하지 않아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적용 시점이 이르다”며 “소득대체율 인하가 완료되는 2028년이나 연금개시연령이 65세가 되는 2033년 적용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연금 전액을 반영하지 말고 절반만 소득으로 잡는 방안도 고려해보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