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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수발에 13세 요양사…가족요양 지원 후 생긴 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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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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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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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내년부터 36개월 이하 영아를 돌보는 조부모 등 4촌 이내 친인척에게 월 30만원의 돌봄수당을 지원한다. 서울 서초구, 광주광역시 등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도 가족 돌봄에 대해 월 30만~7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 방문 요양보호사와 달리 가족 중 누군가가 요양보호사가 돼 환자(수급자)를 돌보면 지원한다. 가족 돌봄을 두고 일부에선 “가족 손길을 확대해 초고령화와 저출산을 넘자”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돌봄 제도를 내실화해 가족 부담을 줄여야 하는데 이런 기조에 역행한다”고 맞선다.

경기도에 사는 80대 파킨슨병 환자는 50대 며느리 A씨의 수발을 받는다. 균형감각이 떨어져 화장실에 못 가고, 옷 갈아입기 등의 일상생활이 어렵다. 외부 접촉을 싫어해서 주간보호센터(일종의 노인 유치원) 가는 것도 꺼린다. 재가복지센터에서 파견한 요양보호사가 와서 10일, A씨가 20일 수발한다. A씨는 가정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여서 월 30만원 남짓의 지원금을 받는다.

손주수당 계기로 살펴본 가족돌봄
12만 가족요양사 30~70만원 받아
“만족도 높으니 장려해야” 주장에
“부모 돌봄 당연한데 웬 지원” 맞서

가정 요양보호사 4년 새 두 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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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같은 가정 요양보호사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2017년 6만3517명에서 지난해 12만1332명으로 4년 만에 약 두 배가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방문 요양보호사의 32.3%를 차지한다. 2017년 27%에서 조금씩 늘고 있다. 가족 요양보호사가 되려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재가복지센터에 등록한 뒤 가족을 돌보면 된다. 다만 무한정 인정하지 않는다. 요양사 본인이 65세 이상이면서 배우자를 수발하거나 수급자가 폭력 성향이 있는 치매 환자이면 하루에 90분, 월 31일까지 인정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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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지원금이 약 94만원인데, 법정 본인부담금(15%)과 재가복지센터 수수료를 빼면 대략 65만원 안팎을 받는다. 그 외 가정 요양보호사는 하루 60분, 월 20일만 인정하며 지원금(월 최대 약 45만원) 중 30만~35만원(지역별로 차이날 수 있음)을 받는다. 공공근로 노인 일자리(월 30시간) 27만원보다 높다. 물론 재가급여 한도액(1등급 약 167만원) 내에서 받기 때문에 받는 만큼 일반 요양보호사 방문시간이 줄어든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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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장현재 파티마의원 원장(재가복지센터 운영)은 “남편이든 부인이든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이다. 가족이 돌보는 게 만족도가 훨씬 높고, 요양원·요양병원 행(行)을 줄인다”며 “가족 돌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원장은 “배우자나 부모를 돌보면서 돈이 나오니까 더 정성을 들이더라”며 “60, 70대 노인이 나가서 돈 벌 데가 없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현 파티마 재가복지센터 실장도 “배우자나 부모를 쭉 수발하다가 요양사 자격증을 따면 지원금을 받아 약값이나 반찬값으로 쓰니 (생계에) 도움이 된다. 이런 인센티브가 가족 돌봄의 동기가 된다”고 말했다.

심야·새벽돌봄 6.8%, 방문 요양은 0.4%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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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기능도 많지만, 그늘도 있다. “부모·배우자 돌봄에 왜 돈을 주느냐” “가족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 취지에 역행한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오남용이다. 기업형 재가복지센터가 전국 단위로 가족 요양보호사를 등록받아 수수료를 챙긴다. 또 새벽 수발, 13세 요양사도 등장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가족 요양사가 오후 10시~오전 6시에 수발서비스를 제공한 비율이 6.8%에 달한다. 일반 방문요양사가 그 시간에 서비스를 제공한 건 0.4%에 불과하다. 오후 6~10시도 가족 요양사는 13.7%, 일반 요양사는 0.4%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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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가족 요양사는 13세 중학생, 최고령자는 100세 할아버지이다. 2017년 이후 90대가 4명 확인됐다. 10대도 6명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 수급자에게 서비스한다거나 10대가 요양보호사인 게 상식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든 일반 요양사든 간에 수급자 어르신이 제대로 서비스를 받는 게 중요하다”며 “이런 차원에서 제도 보완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독일은 가족 요양보호사 제도는 없지만 서비스 한도의 50%를 현금으로 수급자에게 지급한다. 일본은 극히 일부 지역에서 가족 요양사를 인정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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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데도 요양사 자격증을 못 따서 지원금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서울 노원구 채모(74)씨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75)을 6년째 돌보고 있다. 자격증을 따려고 여섯 번 응시했지만 낙방해 올 초 포기했다. 채씨는 “하남·의정부·포천에 가서 시험을 봤지만, 매번 응시료(3만원)만 날렸다”며 “취로사업(공공근로 노인 일자리)이라도 하고 싶지만, 남편 곁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중증환자 아내(71)를 돌보던 서울 마포구 이모(75)씨도 “요양사 자격증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장기요양보험은 도서·벽지 등지에 서비스 제공기관이 없는 점을 고려해 월 15만원의 요양비를 가족에게 제공한다. 2017년 908명이 13억원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1267명이 16억원을 받았다. 채씨나 이씨는 이런 경우와 다를 바 없는데 가족요양비를 못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