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에서 가장 바쁜 선수는 내야수 박찬호(27)다. 1번 타자, 유격수, 팀내 도루 1위까지 척척 해내고 있다.
KIA는 지난해 1번 타자로 142경기에 출전한 최원준이 군입대했다. 후임자 찾기엔 시간이 좀 걸렸다. 6명의 선수가 돌아가며 맡았다. 하지만 이젠 주인이 생겼다. 박찬호가 6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전 이후 두 경기만 빼고 모두 1번 타자로 출전했다. 실책(18개)이 다소 많지만, 탁월한 반사신경과 운동 능력을 활용한 수비도 여전히 일품이다.
1번 타순은 까다롭다. 가장 많은 타석에 서고, 출루도 좀 더 신경써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찬호는 꺼리지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 박찬호는 "1번 타자로 나가는 게 재밌다"고 했다. 그는 "이제는 익숙해졌다. (당연히 1번일테니)라인업을 바로바로 확인하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똑같이 준비하면 되니까 편하다"고 했다.
성적도 좋다. 시즌 타율은 0.291(382타수 111안타). 출루율도 목표로 했던 0.350을 넘은 0.363이다. 지난 28일 경기에선 무려 5안타를 몰아쳤다. 마지막 안타 때 3루로 달리다 아웃되는 바람에 사이클링 히트를 아쉽게 놓치기도 했다. 박찬호는 "타격 접근 방식을 바꿨다"고 맹타의 비결을 설명했다.
2년 전 박찬호는 타격 폼을 자주 바꿨다. 어떻게든 좋아지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오히려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힘을 모으기 위해 다리를 들고 쳤지만, 이젠 오른 뒤꿈치를 들고 살짝 지면에 찍는 토탭(Toe-Tap)으로 바꾸면서 정확도가 올라갔다.
토탭 타격은 아무래도 레그킥보다 힘을 싣기 어렵다. 하지만 박찬호는 예전보다 강한 타구들을 더 많이 날리고 있다. 꾸준히 해온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이다. 박찬호는 도루왕에 올랐을 때부터 "홈런을 더 많이 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몸 만들기에 열중했다.
강점인 스피드도 여전하다. 30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김혜성(33개·키움 히어로즈)에 이은 2위를 달리고 있다. 2019년 이후 3년 만의 도루왕 등극도 충분히 가능하다.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률이 80%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도루 성공률은 81.18%다. KIA 관계자는 "박찬호가 선발투수 견제동작 연구를 열심히 한다"고 귀띔했다.
사실 유격수에겐 1번 타순을 잘 맡기지 않는다. 가장 많은 타구를 처리하기 때문에 체력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찬호는 "체력적으로는 전혀 힘들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지난 겨울 정말 잘 준비했다. 제 몸 상태를 보시지 않았느냐"고 웃었다. 이어 "경험이 쌓였다. 기술 훈련량을 작년의 반 정도로 줄였다"고 했다.
지난 2019년 결혼한 박찬호는 지난 5일 첫 아이를 얻었다. "딸 이름은 비밀"이라고 했지만, '내 남은 인생 모두 야호(태명, 야구 호랑이)를 위해 살겠다"고 했다. 주변에선 박찬호에게 복덩이 딸이 생기면서 야구를 잘하게 됐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박찬호는 "정말 아이 때문에 잘 되는 걸까요"라고 되물었다. 오히려 "그동안 해왔던 노력들이 아이와 함께 빛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땀흘리고 준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