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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투자’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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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팩플팀 팀장

박수련 팩플팀 팀장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재활용 쓰레기를 부지런히 분리배출하며, 가능한 한 에어컨을 오래 켜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런다고 해결될까’ 싶어 종종 절망스럽다. 산불, 폭우 등 기후 재난은 매년 더 강하게 삶을 위협한다. 소시민의 성실함으로 죄책감을 좀 덜어내는 수준으론 나를 지킬 수 없다.

집단적 불안을 변화의 동력으로 가장 빨리 바꾸는 자본주의적 방법은, 돈이다. 2020년 1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e메일 한 통으로 시동을 걸었다. “투자 결정시 기후변화 리스크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가장 우선 고려하겠다”며 “금융의 근본적인 재구조화”를 선언했다. 화석연료와 가까운 기업엔 투자하지 않겠다는 ‘착한 자본’에 진보 정치인과 기업인이 환호했다. 기후위기 자체를 인정 않는 화석연료 산업과 미 보수 진영의 비아냥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기대가 더 컸다.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2020년 1월 연례 서한을 통해 ESG 투자에 불을 붙였다. [블랙록 홈페이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2020년 1월 연례 서한을 통해 ESG 투자에 불을 붙였다. [블랙록 홈페이지]

그런데 웬걸, 그 블랙록이 최근 기대를 배신했다. 고유가 시대에 화석연료 관련 투자를 외면하는 게 (블랙록에 돈을 맡긴) 고객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수익률과 정치적 압박 앞에서 자본 관리 대리인은 무력했다. 애초에 ‘착한 자본’이란 기대가 잘못됐다. 이윤이 큰 곳으로 움직이는 게 돈이다. 그 돈에 인격을 입히고, 정파적으로 활용한 인간의 정치가 있었을 뿐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착한 돈’이니 ‘착한 투자’라는 마케팅 용어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석유·가스·석탄 자본에 ‘나쁘고 더럽다’는 프레임을 씌울수록, 갈등 비용만 커진다. 에너지 정책을 ‘정의 vs 불의’로 접근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 그런 예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돈이 말해준다. 기후기술 스타트업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벤처캐피털 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기후기술 분야 투자는 448억 달러(60조1440억원)에 달했다. 2020년만 해도 221억 달러였다. 착한 돈이어서가 아니다.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개발 한다면 그 이윤의 과실도 전 지구적 규모로 돌아올 것이라서다. 모험자본은 그 기회를 보고 달려든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기후기술 투자가 꿈틀대고 있다. 하지만 돈의 속도를 창업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100억원 규모 기후기술 펀드를 조성한 소풍벤처스의 한상엽 대표는 “국내는 기후기술 스타트업 모수가 많지 않아, 딥테크(기반기술) 석박사 인재들을 창업자로 육성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매 계절 기후 재난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정부 정책자금의 역할은 이런 데 있지 않을까. 게다가 반도체 이상으로 전 세계에 기회가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정부의 똑똑한 투자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