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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통령 사저 300m 내 경호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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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통령경호처가 21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의 경호구역을 확장했다고 밝혔다. 집회·시위자들의 위협과 욕설 소음 등으로부터 문 전 대통령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회의장단 만찬에서 김진표 의장의 건의를 받고 경호 강화를 지시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야당 출신 국회의장의 건의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통해 국민 통합 행보의 메시지를 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경호처는 21일 언론 공지를 통해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의 경호구역을 확장해 재지정했다. 경남 양산 평산마을 집회·시위 과정에서 모의권총, 커터칼 등 안전 위해요소가 등장하는 등 전직 대통령의 경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며 “마을 주민들의 고통도 고려했다”고 전했다.

지금까진 문 전 대통령 사저를 둘러싼 울타리까지가 경호구역이었는데, 이를 울타리에서 최대 300m까지로 넓혔다. 경호처는 이와 함께 경호구역 내 검문검색과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교통통제, 안전조치 등도 강화할 계획이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이번 조치는 22일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문 전 대통령 사저 경호 강화는 윤 대통령과 국회의장단 만찬의 성과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 “양산 가서 직접 고충 들어라” 경호차장에 지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1대 국회 후반기 신임 국회의장단을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기 비서실장, 윤 대통령, 이진복 정무수석, 김영주 국회 부의장, 김진표 국회의장, 정진석 국회 부의장.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1대 국회 후반기 신임 국회의장단을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기 비서실장, 윤 대통령, 이진복 정무수석, 김영주 국회 부의장, 김진표 국회의장, 정진석 국회 부의장.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단 만찬에서 김진표 의장으로부터 관련 건의를 받고 경호 강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또 윤 대통령은 김종철 경호차장에게 직접 양산으로 내려가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집회·시위 관련 고충을 청취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김 의장은 21일 오후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만찬 당시 오갔던 내용 일부를 전했다. 만찬에서 김 의장은 “사저 주변 사람들이 소음으로 피해를 볼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호구역 확대를 제안했다. 김 의장은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경호처장에게 현장 상황 파악을 지시해 대책을 세워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며 “윤 대통령께서 바로 현지에 경호처 차장을 파견해 조사하고 오늘 발표한 걸로 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사저 인근 집회·시위의 폭력성이 논란이 된 두 달 전에도 이 사안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당시엔 오히려 논란이 커졌다. 지난 6월 7일 출근길에서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주변)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법대로’에 기운 메시지에 야당은 “시위를 부추긴다”(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고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두 달여 만에 변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윤 대통령이 법치 기조에서 국민 통합을 위한 협치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그간 사저 주변에서 협박과 폭력 같은 위해 요소가 많았던 상황에서 경호처의 이런 조치는 불가피했다”면서 “향후 경호구역 확대에 따른 엄정한 법 집행과 관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정치권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양금희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법과 원칙의 차원 및 협치와 국민 통합 차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늦었지만 합당한 조치”라며 “윤 대통령과 김 의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지난 19일 만찬에서 거론된 ‘여야 중진협의체 가동’이 경색된 정국을 푸는 열쇠가 될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김 의장이 제안한 중진협의체 구상에 윤 대통령은 “좋은 방향”이라고 화답하면서 “의회가 국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협치 의지를 밝히면서, 야당엔 국정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의장은 21일 간담회에서 중진협의체의 구체적인 구성 방안에 대해 “5선 의원이 여야 6명씩 동수이니 처음에는 5선 이상부터 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여기에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필요할 경우 국회 상임위원장까지 함께 참여해 토론하면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여야 중진협의체 구성을 통한 협치 모색 방안에 대해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잘 가동되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했다. 반면에 민주당의 반응은 냉랭했다. 윤 대통령과 의장단 만찬이 있던 지난 19일 검찰이 대통령기록관을 두 차례 압수수색하면서 전 정권 수사에 속도를 냈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정치 보복의 칼날을 곳곳에 들이밀면서 협치를 얘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여야 협치가 궤도에 오르기까지 난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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