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장기 물가는 잡겠지만…인플레 감축법, 당장 효과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로이터=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정부의 ‘정치적 승리’로 불리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피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중·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낮출 순 있지만, 당장 치솟는 물가를 잡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법안 명칭과 달리 인플레 잡기에 아무 역할을 못 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줄이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 달러(약 479조원)를 투자한다. 대기업에 최소 15% 법인세 부과, 부자 증세 등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법안 통과에 전원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은 “이 법안이 앞으로 10년간 300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규모 증세로 에너지 등 가계의 비용 부담과 재정적자를 줄여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인플레 감축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신용평가사는 장·단기 효과가 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무디스의 마드하비 보킬 수석부사장은 “(해당 법안으로) 2~3년 안에 생산성이 향상되며 인플레이션 감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피치의 찰스 세빌 미국 법인 공동대표도 “해당 법안의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에 효과를 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당장이다. 바이든 정부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최대 관심사는 4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솟구친 현재의 물가다. 이에 대해 보킬 수석 부사장은 “이 법안이 올해나 내년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진 않을 것”이라며 “단기적 관점에서 물가는 (이 법안이 아니라) Fed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학계에선 ‘인플레 감축 법안’이 이름값을 못할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증세 중심인 인플레 감축 법안이 오히려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버논 스미스와 미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지낸 케빈 해싯 등 경제학자 230명이 이런 입장을 담은 서한을 미국 상·하원 지도부에 보냈다.

폭스비즈니스 등에 따르면 이들 경제학자는 “정부 지출은 수요를 진작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키울 수 있고, 법인세 인상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법안의 명칭과 달리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할 것"이라며 법안의 역효과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인플레 감축법의 ‘효과’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예상하지 못한 기후 위기나 환경 대응 관련 비용을 늘려야 하는 미국 기업은 실적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 자사주 매입에 1%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 내용은 기업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서다. 현재 미국 법인세율은 21%이지만 각종 감면 혜택으로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는 기업도 많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기업의 세 부담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8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법인세와 자사주 매입세가 내년 1월부터 적용되더라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의 내년 주당순이익은 1.5% 낮아지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씨티그룹도 “이번 법안으로 기업 순익은 0.42% 줄어들 것이라며 최저법인세 도입에 대한 기업의 반응은 과장됐다”고 했다.
인플레 압력이 거세지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관심은 인플레 감축법보다 오는 10일(현지시간) 발표되는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쏠린다. Fed의 통화정책 방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월가에선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6월 CPI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보다 소폭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월스트리저널(WSJ)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7월 CPI가 8.8%(전년동월대비)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점 통과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하는 전망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기대인플레이션도 하락하면서 Fed의 긴축 강도가 완화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CNBC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뉴욕연방준비은행의 월간 소비자예상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은 내년 미 물가상승률은 6.2%로 6월 조사(6.8%)와 비교하면 0.6%포인트 하락했다.

인플레 감축 법안은 국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까.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수출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인플레 감축법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팀장은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엔 호재일 수 있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거래하면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점에서 수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