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 관광버스 눈감아준 행정(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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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일 일어난 소양호 버스추락 참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갖가지 범법이 행정의 구조적 비리나 공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물론 사고차의 운전사가 앞차를 추월하려고 중앙선을 침범해 과속으로 달린 데 있다. 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부실한 다리난간이나 급커브로 된 도로상태 등 도로조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사고버스는 이미 승객의 안전이나 사후보상을 책임질 수 없는 무허가 관광버스였던 것이다. 사고버스는 앞 뒤에 「○○관광」이라고 위장 명칭까지 버젓이 써놓았다. 승객들로서는 당연히 이 버스가 허가받은 관광회사차인 줄 알았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불법영업을 해온 지가 이미 5∼6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무실도 서울시내에 있었다.
그동안 시청이나 경찰은 무얼하고 있었던 것인가.
우리는 그런 불법영업 행위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행정의 공백이라기보다는 불법을 알고도 묵인해온 공무원들의 구조적 비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허가 관광버스의 영업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관광철이나 명절 때마다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건만 누구도 단속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관광버스에 대한 수요가 많다면 허가를 확대해야 하고 허가받지 않은 영업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단속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시 행정당국도,경찰도 그냥 묵인하고 있으니 탈세를 위해 무허가 관광버스는 늘어만 가고 끝내 이번 사고와 같은 대형참사도 빚어지는 것이다.
최근 「범죄와의 전쟁」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무허가 유흥업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허가받은 유흥업소는 1천6백90개소인 데 비해 무허가는 4천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이것이 관계공무원들의 묵인 없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대중업소로 허가를 얻어 불법ㆍ변태영업을 할 줄 뻔히 알면서도 허가를 내주고 대중음식점이 요란한 네온사인까지 설치하고 불법ㆍ변태영업을 해도 그대로 방치하며 단속이 실시되면 사전에 귀띔까지 해주는 형편이니 무허가 유흥업소는 날로 번창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3일 서울시가 유흥업소 담당공무원인 본청ㆍ구청 위생과 직원의 60%를 전격 교체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일반 직원뿐 아니라 상급자들에 대한 인사도 필요하다고 본다.
위생과뿐 아니라 교통ㆍ건축 등 불법ㆍ무허가 행위와 관련되는 민원담당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도 있어야 한다. 또 이들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무공무원과 경찰공무원들에 대한 인사쇄신도 뒤따라야 한다.
우리가 이들 업주 관계공무원들이 모두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이러한 대대적인 인사에는 부작용도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제도상의 문제 등 인사만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만연된 구조적 비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사쇄신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의 비리나 부정을 줄여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행정이 깨끗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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