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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 발 묶인 아이티 지진 1억 구호품”...광복절 무렵 배 뜬다

중앙일보

입력

부산시민이 모은 구호품, 11개월 만에 아이티로 

부산 삼성여고 운동장에 1년 가까이 방치돼있던 아이티 지진 구호물품이 아이티로 향한다. 포스코 물류 계열사인 포스코플로우㈜가 1억원 넘는 운송 비용을 선뜻 떠안고 아이티행 배편을 알아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삼성중·여고 재학생과 부산 시민이 모은 의류 5만벌 등 구호품은 광복절을 전후로 아이티로 가는 뱃길에 오를 예정이다.

아이티로 보내기 위해 모은 구호물품이 부산 삼성여고 운동장 컨테이너에 쌓여있다. 김민주 기자

아이티로 보내기 위해 모은 구호물품이 부산 삼성여고 운동장 컨테이너에 쌓여있다. 김민주 기자

1일 부산소망성결교회 원승재(75) 목사와 포스코플로우 측에 따르면 포스코플로우측은 지난달 12일 삼성여고 운동장을 방문했다. 원 목사는 부산시 허가를 얻어 구호물품 모집을 주도했다. 포스코플로우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구호 물품 보관 상태를 확인했다. 구호품은 지난해 8월 14일 규모 7.2 강진에 1300명이 숨지고 3만여 가구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피해를 당한 아이티에 보내기 위해 모았다. 의류 5만벌 이외에도 신발 3만 켤레와 피아노, 자전거 등 1TEU(가로·세로 2.4m, 높이 8m) 컨테이너 4개 분량, 시가 1억2000만원 상당이며 모두 새 제품이다.

하지만 구호품은 아이티로 가지 못하고 11개월간 삼성여고 운동장에 발이 묶였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희망기술학교’를 세우는 등 장기간 현지 봉사활동을 해온 원 목사는 “아이티까지 물류비로 2000만원을 예상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1억원까지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보다 못한 삼성여고 이서영(3학년)양이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써 “부디 이 일에 도움을 주시면 좋겠다”고 호소했지만, 외교부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가 이들 구호품을 접수하거나, 아이티 전달을 대행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지난해 8월 규모 7.2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 AP연합뉴스

지난해 8월 규모 7.2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 AP연합뉴스

“구호품에 ‘잘 가라’ 인사하고 싶어요”
남은 시간도 촉박해 기부자들이 애를 태웠다. 오는 10월 7일이면 부산시 물품 모집 허가 기간이 만료돼 어렵게 모은 물품을 모두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수도 있어서다. 포스코플로우는 이 같은 사연(본지 7월 12일자 20면)을 접하면서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포스코플로우는 포스코가 그룹의 물류 기능을 조정하면서 지난 4월 출범한 포스코 계열사로, 올해 2조5000억원 매출이 전망되는 기업이다. 포스코플로우 김기형 팀장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구호품이 모두 새 제품이며, 보관 상태도 양호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뱃길을 찾는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김 팀장은 “지난해 지진 여파로 손상된 아이티 포르토프랭스항 항만 기능이 회복되지 않았다. 구호품을 싣고 가더라도 내릴 수 없는 상태”라며 “수소문 끝에 인근 파나마항에서 피더선(대형 항만과 중소형 항만 사이 컨테이너 수송에 사용되는 중소형 선박)으로 옮겨싣는 방안을 찾았다. 이달 중순쯤 부산에서 배가 출발하면 아이티까지 35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부산 삼성여고, 삼성중학교 학생들이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로 보낼 구호품을 모으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 삼성여고, 삼성중학교 학생들이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로 보낼 구호품을 모으고 있다. 송봉근 기자

구호품 모집에 참여했던 삼성여고 임유하(3학년) 학생은 “운동장에 놓인 구호품을 볼 때마다 걱정됐다. 친구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관련 기사가 나오고, 민간 기업이 관심을 기울여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을 마음 졸이며 지켜봤다. 컨테이너가 운동장을 떠날 때 '잘 가' 하고 인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포스코플로우에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편지 접수한 포스코플로우“기업시민책무”

포스코플로우는 ‘기업 또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개념의 ‘기업시민’의 마음가짐으로 이번 사태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김광수 포스코플로우 사장은 “사회구성원으로 새롭게 출범한 포스코플로우가 이번 구호물품 전달에 역할을 할 수 있어 매우 뜻깊게 여긴다”며 “부산 학생들이 보내준 진심 어린 감사 편지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티 지진. AP연합뉴스]

아이티 지진.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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