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대북제재 조치 '뻥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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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핵실험에 대응해 정부가 취한다는 대북제재 조치를 들어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13일 유엔에 제출한 안보리 대북결의 1718호와 관련한 정부 보고서도 그렇다. 정부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체적 수치도 제시했다. 남북 간에 예정된 4억5400만 달러 규모의 거래 가운데 80%인 3억6000만 달러를 중지시켰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한국이 북한 벌주기에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정부가 북핵 제재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은 생뚱맞은 얘기 같다.

그런데 정부가 내세운 통계치를 꼼꼼히 따져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2억7000만 달러 규모의 쌀.비료지원을 중단시켰다거나 8000만 달러어치 대북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유보했다는 것은 핵실험에 대응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7월 장관급회담 때 쌀 50만t을 요청했다. 그러나 회담 판을 깨고 평양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비료는 이미 2월과 5월 두 차례 35만t을 보냈다. 통일부는 지난달 말 국정감사 보고서에 "쌀과 비료 지원 논의는 미사일 발사로 유보된 상태"라고 했다. 북핵 실험으로 중단된 게 아니다.

정부는 북한 수해 복구를 위한 쌀 10만t의 지원도 끊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미 9만t 가까이 북송을 마쳐 실효성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북한 주민이 쓸 비누.신발을 만들 경공업 원자재 제공도 5월 북한이 철도 시험운행을 거부하면서 언제 실현될지 모를 일이 돼 버렸다. 한강 하구 모래 채취 사업 같은 구상 단계의 남북협력 사업도 끼워 넣기를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브리핑에 나선 당국자는 "핵실험은 신의를 저버린 것으로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를 감안해야 한다거나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같은 상황 변화가 생겼다고 말하는 정부의 고민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이것저것 알맹이 없는 걸 끌어 모아 대북제재의 몸집을 부풀리려는 눈속임을 해선 안 된다. 국민의 신뢰도 얻지 못하는 유엔 보고서가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영종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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