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액으로 명품·건물 투자 매력, 거래량 적어 처분 어려워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87호 15면

MZ세대 열광 ‘조각투자’ 명암 

직장인 조용형(30·가명)씨는 지난해 11월 이른바 ‘조각투자’ 플랫폼에서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 ‘GMT MASTER Ⅱ’ 모델 100조각을 매수했다. 1조각당 1000원이었고, 총 판매금액은 2050만원이었다. 이 시계는 1월 2300만원에 매각돼, 조각 소유자인 조씨에게 원금과 보유 조각 비율만큼 수익금이 배분됐다. 조씨는 “수익률 10%가 났지만 투자금 자체가 많지 않아 실제 수익금은 크지 않다”면서도 “목돈 주고 사기 어려운 상품 일부를 보유할 수 있어 매력”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각투자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사이에서 새로운 투자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조각투자는 명품·미술품·부동산 등의 자산을 매입해 보관·관리·운용하는 사업자가 해당 자산을 보유·판매함으로써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청구권이나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투자자에게 나눠서 판매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투자 방식이다. 1000원 등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고 온라인 판매로 편의성을 높여 젊은층의 유입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가 파산하거나 서비스 중단 시 투자금을 고스란히 떼일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명품·와인 등을 취급하는 조각투자 플랫폼 트레져러 회원 수는 지난달 말 기준 2만7785명으로 지난해 말 대비 약 1.8배 늘었다. 특히 이 기간 20~30대에서만 1만 명이 증가했다. 최소 투자금 4000원으로 송아지를 키워 수익을 내는 한우 소액투자 플랫폼 뱅카우도 올 들어 회원 수가 전년 대비 3배 증가했다. 또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 테사는 올 들어 4개월 만에 회원 수가 2배 넘게 늘었다. 이들 역시 회원 과반 이상이 20~30대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투자자가 늘면서 인지도가 높은 상품은 순식간에 완판(완전 판매)되기도 한다. 3월 트레져러에 올라온 한 롤렉스 시계는 올라온 지 4분 만에 다 팔렸다.

편의성과 함께 음원 콘텐트, NFT(대체불가능한토큰), 빈티지 와인 등 투자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점도 인기 요소다. 테사 관계자는 “미술품도 ‘아트테크’(미술+재테크)란 말이 나올 만큼 젊은 세대에게 굉장히 익숙한 투자 상품이 됐다”고 설명했다.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 기존에 MZ세대를 사로잡았던 투자 상품이 최근 변동성 큰 하락장을 맞으면서 조각투자 상품을 보다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식하게 된 영향도 있다. 화가 마르크 샤갈의 작품 300조각에 투자했다는 30대 황혜미 씨는 “꾸준한 가치 상승을 예상할 수 있고 분할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미술품 조각투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각투자 대상 역시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이나 글로벌 금리 인상 등 경기 변화에 민감한 상품이 많다고 강조한다. 음원 콘텐트 조각투자 플랫폼 뮤직카우에 따르면 이 플랫폼이 산출하는 저작권시세지수(MCPI)는 올 초 대비 지난달 초 19.4% 하락했다. 증시로 치면 지수 변동률이 -19.4%를 기록한 셈이다. 명품 등 다른 조각투자 상품도 최초 구매 가격에 비해 시세가 떨어졌거나, 제값에 안 팔려 고민 중이라는 경험담이 온라인에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각투자 상품 시세에도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될 텐데 이 역시 금리 인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주식 등 기성 투자 상품에 비해 거래량이 많지 않다는 점도 한계다. 투자자가 늘고 있지만 아직 주식처럼 거래량이 충분하지 않아 투자자가 원하는 시점·가격에 보유 자산을 처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조용형씨는 “자산을 매각할 수 없거나, 낮은 가격에 매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진 않을까 늘 걱정이 된다”며 “큰돈을 투자하기엔 아직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업자가 파산하거나 서비스가 중단되면 투자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최근 조각투자 서비스와 관련해 ‘주의’ 등급의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금감원은 “사업자가 자산을 운영해 수익을 배분하겠다는 ‘약속’만 있을 뿐 투자자가 해당 자산을 소유하는 형태가 아니거나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자본시장과 달리 공시 의무가 없어 사업자가 운용 구조나 투자 위험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조각투자 플랫폼이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고 있는지, 투자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불합리한 약관은 아닌지 투자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음원 조각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뮤직카우의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뮤직카우는 6개월 이내에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 증권신고서 심사를 진행하는 등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뮤직카우의 사례로 미뤄볼 때 수익에 대한 청구권을 파는 조각투자 사업자는 앞으로 일정 요건을 갖춰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투자 안전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전망이지만, 시장 진입 문턱이 높아져 당장은 조각투자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각투자 상품은 신산업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자본시장법 규제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