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주연보다 작지만 더 반짝이는 … 이들이 있어 영화가 빛이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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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놀라워라, 조연 4인방=올 '조연 스타 탄생'의 최고 주인공은 단연 '타짜'의 김윤석(38)이다.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한 '타짜'의 아귀 역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다섯 장면에 불과한 짧은 출연이었지만 객석은 온통 그의 카리스마에 녹아들었다. 최동훈 감독이 감독지망생 시절 무대 연기를 보고 홀딱 반했다는 그는 최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도 출연했다. 연우무대와 극단 학전 등을 거친 연극계의 베테랑이다. 올해 출연작만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타짜', TV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 연극 '가을날의 꿈'등 총 5편. 장르를 아우르는 것은 물론 알코올 중독자, 지고지순한 남편, 악랄한 도박꾼 등 도저히 한 인물로 보이지 않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관객을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MBC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의 대책 없는 마마보이 남편 역으로 주부 시청자들의 인기까지 독차지하고 있다.

최 감독은 "존재감이 눈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배우"라며 "특히 상대 연기자를 배려해 오히려 빛난다"고 평했다. '타짜'로 인해 충무로 섭외 1순위로 떠오른 그는 "아귀로 알려진 악역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낼 감독과 일하고 싶다"며 "장르나 역할 비중에 무관하게 현실에 밀착된 영화가 좋다. 지금 시대를 담은 영화라야 내가 죽어서라도 사람들이 봐주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김윤석에게 다소 가려진 감이 있지만 아귀의 맞수인 짝귀 역으로 출연한 주진모(48)도 최근 맹활약 중인 배우다. 국립극단 출신에 연기경력 20여 년의 막강 내공을 자랑하는 실력파. 김윤석이 "평생을 같이하고픈 연기 선배"로 꼽는 인물이기도 하다. '타짜'에서는 고니와 만나는 단 한 장면의 출연만으로도 관객의 뇌리에 박혔다. 인생의 굴곡이 느껴지는 투박한 마스크와 다중적인 분위기가 강점이다. 김혜옥과 커플로 나온 '가족의 탄생', 탈옥을 모의하는 귀여운 범죄자로 나온 '거룩한 계보'가 올해 출연작. 꽃미남 스타 주진모와는 동명이인이다.

장진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로 급부상 중인 류승룡(36)도 관심을 끄는 배우다. 정재영, 정준호와 3인방으로 출연한 '거룩한 계보'에서 두 사람에게 밀리지 않는 팽팽한 에너지를 선보였다. 연극'난타'의 배우로 잘 알려진 그는 연극 '웰컴 투 동막골'로 장진 감독과 인연을 맺은 후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 등 장 감독 영화 6편에 이어 출연했다. 장 감독이 줄곧 "크게 된다"고 말하고 다녔고 그는 그대로 "감독님이 내 매니저"라고 화답할 정도. 남성적인 외모 한편에 숨어있는 섬세함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송혜교 주연의 '황진이',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에 잇따라 출연한다.

조연배우 중 올해 최다 출연상은 단연 윤제문(36)이다. 과거 명계남처럼, "올해 한국영화는 '윤제문이 나오는 영화' '윤제문이 안 나오는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올봄 '로망스'를 시작으로 '비열한 거리' '괴물' '열혈남아', 미개봉작 '우아한 세계' '어깨 너머의 연인'등 6편에 출연하며 인기를 과시했다. 특히 '비열한 거리''열혈남아' 등 조폭의 눈빛 연기에 일가견이 있다는 평. 실제 조폭이 진짜 조폭으로 착각하고 악수를 건넸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다. '열혈남아'의 이정범 감독은 "평소에는 무표정 심드렁하다가도 카메라 앞에 서면 달라진다. 마지막 촬영 때 설경구와 붙어서 기를 뿜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대단했다"고 말한다. 산울림 소극장 출신. 박해일을 연극계의 신성으로 만든 '청춘예찬'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왜 조연 전성시대일까=조연 전성시대는 한국 영화의 장르와 캐릭터가 다양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비중은 작아도 강렬한 캐릭터에 탄탄한 연기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 한국 영화 제작편수가 크게 늘면서 활동 무대가 넓어진 배경도 있다. 특히 최근 남자영화의 열풍은 단순히 코믹 감초를 넘어서는 개성적인 조연들의 설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조연들의 부상은 한국영화가 그만큼 풍성해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연극계의 실력파들이 충무로 인적자원을 풍부하게 하고, 질 높은 연기에 대한 관객들의 눈높이를 끌어올리는 순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남성 조연에 비해 눈에 띄는 여성 조연이 드물다는 것은 주목해볼 부분. 그만큼 여성 캐릭터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또 주연급으로 성장한 이후 조연 때보다 답보상태에 빠진 일부 경우처럼, 조연을 주연으로 가는 비상구 이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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