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의 시대…나는 물가 뛰는 Fed에 "올 연말 기준금리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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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과 물가의 전쟁이 시작됐다. 한국은행이 1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앞서 캐나다와 뉴질랜드 중앙은행도 1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씩 올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병목 현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치솟는 물가가 ‘인플레 파이터’의 본능을 깨웠다. 긴축의 시대가 열렸다.

주상영 의장 직무대행(금통위원)이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2가 한국은행 17층 회의실에서 열린 기준금리 결정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상영 의장 직무대행(금통위원)이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2가 한국은행 17층 회의실에서 열린 기준금리 결정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4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로 0.25%포인트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석 달 만의 인상이다. 이번 인상 결정은 금통위원 만장일치였다.

이날 금통위 회의는 한은 총재(금통위 의장) 없이 열렸다.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겸임한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이창용 총재 후보자의 청문회는 오는 19일 열린다. 총재 공석으로 진행됐던 금통위인 만큼 시장에서는 이번에는 금리를 동결하고 다음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많았다.

그럼에도 금통위가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든 건 최근의 물가 상황이 엄중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주상영 금통위 의장 직무대행은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총재 공석에도 금통위원들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물가 오름세는 매섭다. 그야말로 날고 있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4.1% 상승했다.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4%대 상승률이다. 미국과 중국의 인플레이션 압력도 거세다. 지난달 미국의 CPI 지수는 1년 전보다 8.5% 뛰며 4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년 전보다 8.3% 급등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PPI 급등은 전 세계의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중국산 제품가격 상승을 통한 '인플레이션 수출'이 이뤄질 수 있어서다.

때문에 당분간 물가 상승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문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4%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올해 중 상승률도 2월 전망치(3.1%)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주 직무대행은 연간 물가상승률을 “연간으로 4% 또는 그에 근접한 수준”으로 전망했다. 한은의 물가목표치(연 2%)의 2배 수준이다.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긴축 강도와 속도를 높여가는 것도 부담이다. 오는 5월과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가 기준금리를 각각 0.5%포인트씩 인상하는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는 현재 연 0.25~0.5%다. Fed가 두 번만 빅스텝을 밟아도 금리 상단이 연 1.5%로 올라선다.

한ㆍ미 간 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 투자자의 자본유출과 원화가치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오르며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진다. 한은 입장에서는 여유가 있을 때 기준금리를 금리를 올려둬야만 한·미 간 금리 역전을 막을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이번 한은의 금리 인상도 미국의 긴축 속도에 맞춰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린 것에 초점을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주 직무대행은 “한국 경제의 성장세 등을 고려하면 자본 유출 압력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올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연 2%까지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석길 JP모건 금융시장운용부 본부장은 14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내년 1분기까지 매 분기로 0.25%포인트씩 3차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의 긴축 속도도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연 2.0%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문제는 긴축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는다.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1756조원이다. 금리가 0.25%포인트씩 오를 때 늘어나는 이자 부담은 대출자 1인당 약 16만원 수준이다. 각국이 긴축 기조로 돌아서며 수출이 둔화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은도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3.0%)보다 낮은 2% 중후반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주 직무대행은 “물가를 보면 (금리를) 좀 더 높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경기 하방 위험도 커진 만큼 금통위 내의 의견도 다양해졌다”고 언급했다. 물가만 보고 섣불리 금리를 올릴 수 없다는 의미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불가피한 결정이었지만, 경기 둔화라는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매주, 매월 단위로 발표되는 물가 등의 데이터를 보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한 통화정책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 하향 위험이 높아지는 점도 금통위의 고민일 것”이라며 “하반기 물가가 안정된다면 통화정책의 초점이 물가에서 경기로 옮겨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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