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인 4명이 말하는 「서울 4박5일」/지상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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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만나다보면 열매 맺겠죠”/남은 공해ㆍ광고ㆍ차로 숨막힐 지경/관중들 호응높아 통일열기 실감
북한 축구선수단의 서울 방문은 북한이 45년의 단절이라는 시간의 장막을 걷고 우리에게 조금더 가깝게 다가서게 했다. 한편으로는 같은 핏줄이며 내 겨레임을 실감케했지만 서로 다른 사회속에서 살아오면서 형성된 이질감도 뚜렷이 드러냈다. 오늘의 북한과 북한동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서울의 4박5일을 지낸 북한언론인 4명의 「소감」을 듣는다. 본사 기자들이 개별면담한 내용을 방담형식으로 엮었다.<편집자주>
□참석자
김천일 <단장ㆍ로동신문부장>
리충국 <조선통신 논설위원>
박길동 <중앙방송 해설위원>
리문호 <민주조선 논평위원>
진행ㆍ정리=전종구ㆍ방원석ㆍ안성규기자
­먼저 서울을 방문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4박5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서울 체류동안 보고 느끼신 것들이 많으실텐데요.
▲김천일=나는 서울 방문이 이번으로 모두 다섯번째입니다만 서울 모습은 정신이 없어지게 만듭니다. 차가 너무 많고 광고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고 공해도 너무 심합니다. 또 집들이 계획없이 지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리충국=나도 벌써 서울이 세번째라 낯설지만은 않습니다만 자동차가 늘어나고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서 72년 때와는 딴곳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매연이 너무 심합니다. 숨도 못쉴 정도이고 여기와서는 와이셔츠를 아침 저녁으로 갈아 입어야 했습니다.
▲박길동=나도 85년 수해물자 수송때 와본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습니다만 당시 서울은 올림픽대로가 신설돼 있지 않아 황량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말끔히 단장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체제비방 보도 불만
▲리문호=서울이 처음입니다만 남조선도 자본주의 체계에 맞는 제도와 사회상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박=첫날 판문점을 지나 서울로 들어올 때 시민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 사정을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고 통일을 염원하는 인민의 속마음을 알게돼서 아주 기쁩니다.
▲리충=처음에 환영이 없어 남측이 의도적으로 냉대하고 있다고 오해했던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 그렇지만은 않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은 나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리문ㆍ박=그렇습니다.
­남측의 보도에 대해 불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김=남측의 보도자세에는 굉장히 문제가 많습니다. 언론보도가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우리를 비난하고 있어 앞으로의 대회가 잘 지속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근본에는 남측언론을 조종하는 당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충=북과 남이 합의해서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서로 다른 체제의 인정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남측은 북남교류에 해가 되는 비난을 당연히 삼가야 합니다. 시기적으로 통일축구 행사기간 동안의 북측 비난보도는 고위급 회담에 뒤이은 탓으로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측의 보도는 회담에 찬물을 끼얹는 횡포입니다. 현재와 같은 체제비방이 계속된다면 북조선도 보도대응전을 펼 것이며 이같은 움직임이 현재 일각에서 논의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문=언론은 객관적 현실을 반영해야 되는데 남측의 언론이 북측체제를 헐뜯는 기사를 실어 매우 분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위급회담 뒤의 기사라서 이번 통일축구와 관련이 없다지만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론의 보도는 새로이 조성된 추이에 맞게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큰 문제입니다. 한 입으로는 통일하자 그러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비난한다면 참기가 어렵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남측에 항의하고 사죄를 받아냈지만 그런 현상이 계속되면 북남관계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경호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직된 경호도 문제
▲리문=남조선 당국이 시민들과 우리사람들(북측인사)과의 접촉을 너무 막는 것도 문제입니다. 남조선 당국이 접촉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까발기지는 않겠지만 남조선 당국은 시민들 속에 사복을 입은 단속요원을 배치해 접촉을 막았습니다.
▲리충=요원의 경직된 경호는 진짜 문제입니다.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 기자들에 대한 경호는 이처럼 경직되지 않았었습니다.
▲박=맞습니다. 남조선측 경호원의 자세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접촉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자세는 서로를 이해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북남인민들을 대하는 태도로는 옳지 못합니다.
실례로 남조선 이회택 감독이 우리 축구협회 리명성 부회장을 만나러 왔을 때 문전에서 되돌려보낸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대회에 대한 평가는.
▲김=어쨌든 평양대회도 그랬지만 이번 대회에도 성과가 있었습니다.
관중의 호응도도 높았고 특히 통일열기는 지난번 서울에 왔을 때보다 높아진 것 같습니다.
○통일 선물하고 싶다
▲박=경기가 끝난 뒤 잠실주경기장 주변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열기는 통일을 염원하는 인민들의 속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문=그렇습니다. 선수들이 입장할 때 진심으로 환영했던 것,또 경기도중 우리측이 한 점을 잃자 관중들이 더욱 우리를 응원해 주었던 것은 인민들의 통일열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것 하나만도 성과입니다.
또 경기가 끝난 뒤 늙은이도 울고 우리 선수들의 손을 잡으려했던 시민들의 모습은 통일이 꼭 돼야한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측 여자선수들도 감격해 울지 않았습니까.
­서울방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호텔의 종업원들이 열심히 봉사해주는 모습입니다. 밤 늦도록 그들은 고생이 심했습니다. 대우자동차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들도 생생히 기억될 것입니다. 이들에게 통일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리충=저는 문익환 목사를 경기장에서 만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문목사가 써준 「통일확신」이라는 휘호는 뜻깊게 간직하게될 것입니다.
▲박=나 역시 경기장에서 문목사를 만나 움직임 하나하나를 카메라렌즈에 잡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수확입니다. 남조선에 와서 그동안 소득이 별로 없었는데 천만 다행한 일입니다. 그나마 못했다면 돌아가서 크게 혼이 났을 것입니다.(웃음).
­앞으로 남북의 체육등 제반교류에 대한 전망은.
○북한 정확히 이해를
▲김=이제 통일축구도 끝났고 평양으로의 출발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남측은 다음의 대회를 위해서도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리충=나는 남측이 북조선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우위를 내세워 북조선을 얕잡아보거나 몰아 붙이는 자세는 옳지 못합니다.
남북교류가 빈번해지면 북조선이 무너지리라는 것은 남측의 환상입니다. 북조선은 결코 실패한 사회주의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박=이번 통일축구는 통일의 문을 연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같이 만나다 보면 신뢰감이 형성되고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남조선 언론들이 성급하게 열매를 따낼 생각을 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안녕히들 돌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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