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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여기도 벙커" 尹 군사기밀 누설 논란 따져봤더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하고 있다. [YTN 캡처]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하고 있다. [YTN 캡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관련 브리핑에서 국방부 벙커 위치를 언급한 것 관련, 일각에서 ‘군사기밀 누설’이라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인 측은 “보안시설 누출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박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일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하면서 국방부 지하 벙커 위치를 설명했다. 당시 윤 당선인은 국방부 조감도를 손으로 짚어가며 “지금 여기도 지하벙커가 있고 여기도 지하벙커가 있고, 비상시에는 여기 밑으로 다 통로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비상시엔 여기서 NSC를 바로 할 수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일반인에게 알려져선 안 될 군사 시설 위치를 노출했다”며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주장이 제기됐다. 윤 당선인이 브리핑을 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메모하며 “그럼 깊이는 어느 정도 되냐”고 질문하는 합성 사진이 확산하기도 했다.

2012년 8월 합동참모본부 신청사 준공식. [YTN 캡처]

2012년 8월 합동참모본부 신청사 준공식. [YTN 캡처]

합참 B-2 벙커 존재, 계엄령 문건 등으로 이미 알려져…구체적 위치 짚은 것도 아냐

윤 당선인의 벙커 공개 언급은 정말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일까.

군사기밀 등급은 1‧2‧3급으로 나뉘는데, 이 중 군 벙커의 위치 정보는 2급 군사 기밀에 해당한다.

다만 윤 당선인이 말한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청사 지하의 B-2 벙커 존재 자체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 지난 2012년 8월 8일 합동참모본부 신청사 준공식에서 “지하 3·4층은 작전 시설과 군사정보부 기계 발전기실이 있다”며 언급된 바 있다.

지난 2018년 7월 23일 국방부가 공개한 박근혜 정부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만든 계엄령 문건 ‘대비계획 세부자료’에도 B-2 벙커가 언급된다.

당시 문건엔 유사시 지휘소 역할을 하는 벙커인 서울 관악산 인근에 자리한 수도방위사령부의 B-1 문서고,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청사 지하의 B-2 문서고, 육‧해‧공군 본부가 자리 잡은 충남 계룡대의 U-3 문서고가 언급됐고 이것이 국방부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광활한 잔디밭을 하나 짚은 게 보안시설 누출이란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B-2 벙커는 이미 많은 분께 공개된 바가 있다”며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기밀 누설이라고 하기에는 위치 정보의 구체성도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 법무관 출신의 박지훈 변호사는 YTN과 인터뷰에서 “군사기밀이 되기에는 조감도 상 위치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고, 그 안에 어떤 시설이 정확하게 있는지를 말한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면서 공개한 조감도.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면서 공개한 조감도. 뉴스1

법리적 해석 여지는 남아…대법원 “적법절차 없는 한 기밀성 사라지는 건 아냐”

하지만 법리적으로는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사기밀 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면 국가 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군(군) 관련 문서, 도화(도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 기록 또는 물건’을 군사기밀로 정의하고 있다.

아울러 ‘군사기밀의 공개’에 대해서는 “군사기밀 내용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개할 것을 결정하여 비밀 취급이 인가되지 아니한 일반인에게 성명(성명)·언론·집회 등을 통하여 공표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적법절차에 따라 군사기밀을 해제하기로 인가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는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1994년 대법원은 “일부 공개됐다고 해도 적법 절차에 따라 기밀이 해제되지 않는 한, 기밀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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