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상 무리" "대선불복" 신구권력 2번째 정면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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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무실에서 열린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윤 당선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장제원 비서실장, 김은혜 대변인. 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무실에서 열린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윤 당선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장제원 비서실장, 김은혜 대변인.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실 용산행’이 21일 새 국면을 맞았다. 그간 대통령실 이전 등은 윤 당선인과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간 대립이었는데, 이날 청와대가 “무리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해서다. 이에 윤 당선인 측도 즉각 “취임해도 통의동(인수위 사무실)에서 일하겠다”며 맞불을 놓아 신구(新舊) 권력 충돌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개최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까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시일 안에 국방부, 합참,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등 보좌기구, 경호처 등을 이전한다는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전날 윤 당선인이 청와대의 용산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온 정면 반발이다. 이날 회의는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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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NSC 회의엔 기존 참석자 외에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장관,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추가로 참석시켜, 청와대 이전으로 인해 발생할 우려를 보고하도록 했다.

박 수석은 “문 대통령도 대선 때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공약한 바 있어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는 뜻에 공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안보 역량의 결집이 필요한 정부 교체기에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의 이전이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 중엔 국방부와 합참의 이전 작업에 협조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안타깝다”며 “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대해 협조를 거부한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예산집행권, 국군통수권, 정부지휘권 등을 행사하는 문 대통령의 동의가 없으면 취임 전엔 청와대 이전을 강행할 수 없다.

이날 청와대가 반대 근거로 내세운 안보 위협은 문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국군통수권과 정부지휘권을 활용해 군과 국방부를 계속 통제하겠다는 의미다. 청와대는 여기에 윤 당선인이 요구한 예비비 편성에 대해서도 “내일(22일) 국무회의에 예비비 관련 안건 상정은 어려울 것”이라며 거부했다.

대통령 참석 NSC 뒤 강경 선회 … 윤측 “새 정부 출범에 흙탕물”

안철수 인수위원장(가운데)이 21일 서울 통의동 사무실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안철수 인수위원장(가운데)이 21일 서울 통의동 사무실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당선인이 이전을 추진할 ‘법적 권한’과 ‘돈줄’을 모두 차단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에 대해 김은혜 대변인은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조치할 시급한 민생 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 나갈 것”이라며 “5월 10일 0시부로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윤 당선인은 청와대 ‘입성’을 거부하고 현재 사용 중인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무실에서 계속 집무를 이어가겠다는 맞대응이다.

문 대통령의 제동에 대해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의 노골적 어깃장”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차기 정부에 대한 노골적 반발이 우려스럽다”며 “윤 당선인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을 설득한 지 하루 만에 구(舊)권력이 태클을 거는 모습은 정치 도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대통령의 안전이 최고의 안보인데, 남북 대치 상황에서 대통령이 갈 곳도 없게 만드는 처사가 곧 대선 불복”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이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몽니를 부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물러나는 대통령이 협조는커녕 이런 식으로 당선인의 굴복을 강요하는 게 말이 되나”라며 “문 대통령이 심정적으로 대선 결과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새 정부의 출범에 흙탕물을 뿌리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다만 한 인수위 인사는 “문 대통령과의 대치가 심화되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과의 협조도 더욱 어려워진다”며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조직법 개편 등 정부 출범을 위한 필수 절차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가급적 원만히 타협점을 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이란 점을 부각하고 있다.

박 수석은 이날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 밤 12시까지 국가 안보와 군 통수는 현 정부와 현 대통령의 내려놓을 수 없는 책무”라며 “국방부와 합참, 관련 기관 등은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림 없이 임무에 임해주기 바란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함께 전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4월 한 달은 한반도 안보에서 가장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전후해 도발을 반복해 왔다. 올해 태양절은 북한이 특히 중시하는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인 110주년으로, 신형 ICBM인 ‘화성-17형’ 시험발사 가능성이 있다. 올해 태양절 전후로 대선 때문에 연기된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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