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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간디는 왜 정치를 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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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 인도 건국의 아버지, 비폭력 저항가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흔히 보는 정치가는 아니었다. 정치를 하면서도 속속들이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해탈(목샤)을 구하는 한 사람의 구도자에 불과하네. 그러나 금생에는 아직 해탈을 얻기에 적합하지 않네. 나의 고행은 충분히 엄혹하지 못하네. 내가 내 자신의 타오르는 욕정을 통제할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아직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네. 나는 내 입맛을 통제할 수 있지만, 혀가 미식을 즐기는 것까지는 아직 그만두지 못했다네. (…) 부단한 실천을 통해 감각이 대상을 맛볼 수조차 없게 된 자는 자기통제마저 초월해버린 자이고, 사실상 해탈을 얻은 자이네. (…) 나에게는 자치를 얻기 위한 노력조차 해탈을 얻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네.”(『문명·정치·종교』, 나남)

정치도 해탈의 길로 본 간디
자유를 앗아가는 정치와 싸워
새 대통령은 진리와 사랑으로
전 국민을 하나로 만드시길

나이 쉰 둘, 공적 생애의 중간에서 정리한, 극히 간명한 인생관이다. 남은 인생도 그렇게 보낸다. 글쓰기를 포함한 모든 행위, 인도의 자치와 독립 운동도 그 목표는 해탈이다. 해탈 성취의 기준으로, 엄혹한 고행, 욕정과 미각의 완전 통제, 자기통제마저 초월한 경지를 제시한다. 하지만 자신은 기준 미달이어서 금생에 해탈은 어렵다고 본다. 간디처럼 정치도 해탈의 길로 보면 스스로 탐욕에서 자유로워지고 공적 영역에서는 부정부패에서 멀어질 것이다.

인도인 친구 한 사람이 간디가 파업 같은 과격한 직접 행동을 한 탓에 정치가로 전락해버렸다고 보고 이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다. 간디는 자신이 정치가도 성자도 아니고 ‘오직 진리를 향한 겸손한 구도자’라고 답한다. 그에게 정치가의 속성이 있다고 시인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다음, 정치 참여 이유에 대해 “오늘날의 정치가 뱀의 똬리처럼 우리를 휘감고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문명·정치·종교』) 간디의 정치 참여는 정치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다. 영국 제국주의는 명백한 속박이었다. 오늘날 속박 없는 국·내외 정치가 과연 가능할까?

같은 글 후반에서 간디는 직접 행동의 본보기로서 붓다와 그리스도에 주목한다. “붓다는 두려움 없이 전쟁을 하면서 원수의 진지까지 진격해 갔고 교만한 사제들을 굴복시켰다. 그리스도는 환전상을 예루살렘의 교회에서 쫓아내고 위선자와 바리새인들 위에 천국의 저주를 퍼부었다. 둘 모두 치열한 직접 행동이었다. 하지만 붓다와 그리스도는 벌을 주면서도, 그들의 모든 행위 배후에 놓칠 수 없는 온유함과 사랑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간디는 두 스승을 직접 행동과 사랑, 그리고 자기희생의 모범으로 보았다.

간디의 눈에는 정치가 우리를 옥죌 때 비폭력 저항과 같은 직접 행동이 없는 명상은 정신적 방탕이다. 거짓과 험한 말에 지치면 우리는 자연의 풍광과 아름다운 음과 색을 찾아 삶의 향기로 삼고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그 향기에 취해 정치적 속박은 모른 채하고 싸울 의지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자연과 음악도 명상처럼 정신적 방탕을 낳을 수 있다.

간디의 직접 행동에는 서약이 필수였다. 핵심 서약은 진리와 아힘사(비폭력)다. 진리 서약은 거짓말 하지 않기 서약, 나라의 선을 위해서도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비폭력 서약은 살생 금지를 넘어가 자신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분노하고 그를 죽이는 대신 사랑하겠다는 서약이다. 간디는 핵심 서약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순결 등 다섯 서약을 강조했다.

13세에 결혼한 간디는 38세에 순결을 서약한 뒤, 부부관계 금지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다음은 미각의 통제 서약인데, 미각이 사람 속의 동물적인 욕정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아서다. ‘훔치기 않기’와 무소유 서약도 있다. 무소유 서약은 꼭 필요하지 않는 것이면 갖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마지막으로 ‘두려움 없음’의 서약은 통치자, 강도, 죽음을 겁내지 말자는 서약이다. 간디의 경험에서 보면, 미각을 포함해서 시청각 위주의 예능이 활발한 사회는 반드시 축복은 아니다. 감각적인 자극은 자칫 순결을 훼손하고, 거짓말과 폭력을 낳기 때문이다.

간디가 정치를 한 것은 진리·사랑·자유를 위해서였다. 해탈과도 직결된 이런 덕목들은 공동체에도 필수다. 거짓·증오·속박이 판치면 국가도 가정도 지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나 간디가 될 수는 없다. 남에게 해탈이나 순결 서약과 미각 통제 서약을 강요할 수도 없다.

대선의 결과는 환호와 절망을 낳을 것이다. 승자는 5년 동안만이라도 국민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실패도 숨기지 않겠다고 약속하라. 이어서 패배감과 분노를 느끼는 국민을 위로하라. 진정한 위로는 그들이 아끼는 가치도 수용해서 협치하는 것이다. 이는 사랑의 표현이지만 새 정권의 성공 가능성도 높여준다. 그리고 전 세계인 앞에서 우리의 대통령 직접선거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밝게 웃으며 자축하자.

대한민국은 이렇게 하늘과 땅처럼 오래 갈 것이다.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