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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퍼펙트 스톰을 대비해야 할 한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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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과연 한국 경제는 올해 순탄하게 성장할까? 지난주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경제성장률 3.0%, 소비자물가 상승률 3.1%를 예측했다. 불확실성이 많지만, 세계 경제의 회복세와 국내 방역조치 완화로 성장률은 양호하고 물가상승률은 다소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경제를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대내외 부정적인 요인 때문에 한은의 예상치보다 성장률은 낮고 물가상승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국민들이 이중고(二重苦)를 겪게 되는 것이다. 저성장으로 경기가 침체하면 일자리가 늘지 않고 근로자 임금과 기업 수익이 줄어든다.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 생계비가 오르고 가격변동이 심해서 경제생활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실물자산의 가치가 오르고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유가·금리 상승, 세계경제 불안
코로나·국정 관리 국내 위험 많아
미래는 저출산과 저성장으로 암울
위험 대비와 효과적 정책 대응 중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으로 한국 경제가 매우 심각한 위기를 겪을 가능성마저 크다.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는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겹쳐 상당한 파괴력을 갖게 되는 기상 현상이다. 경제학적으로는 드물게 발생하는 악재들이 동시다발로 나타나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대형 경제위기가 초래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지금 세계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원유·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또한, 미국의 인플레이션으로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1%포인트 이상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월 세계경제전망 발표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해 10월에 예측했던 4.9%에서 4.4%로 낮추었으며 4%대 달성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와 미국 금리 인상속도의 가속화에 더불어 오미크론 확산과 중국 경제 부진이 겹치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다. 세계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게다가 미·중 간 대립 속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도 크다.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외 요인들이 한꺼번에 발생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특히 해외 충격에 취약하다. 에너지와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하고, 생산품을 수출에 의존하는 산업구조이며 금융의 대외 개방도가 높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큰 외부 충격이 왔을 때마다 경제위기를 겪었다. 경제성장률이 1980년 -1.6%, 1998년 -5.1%, 2010년 0.8%, 2020년 -0.9%로 추락했다. 에너지·원자재가격이 오르는 시기에는 물가상승률도 높았다. 오일쇼크를 겪은 1980년의 물가상승률은 19%, 외환위기였던 1998년의 물가상승률은 7.5%였다.

올해 발생하는 해외 충격이 과거의 오일쇼크나 글로벌 금융위기만큼 심각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외부 충격이 내부의 취약한 부분과 결합하고 정부가 대응을 미숙하게 하면, 충격이 증폭되면서 엄청난 태풍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상황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중증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 일상 회복이 늦어지고 민간소비와 투자 회복에 불확실성이 크다. 대통령 선거 이후 정권 교체기와 새 정부 초창기에 국정 관리가 잘 될지, 무리한 경제정책들이 펼쳐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앞으로 신정부가 들어서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이다.

한국 경제의 중장기 전망은 우울하다. 합계출산율이 0.81명으로 전 세계 최하위권이고 인구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생산성 향상은 정체되어 성장 잠재력이 하락하고 있다. 가계와 정부의 부채는 사상 최대이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3분기 말에 가계 처분가능소득의 174%에 달했다. 지난 5년간 정부부채(IMF 기준)는 국내총생산(GDP)의 41%에서 51%로 급상승했다. 민간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정부의 재정 여력도 소진되고 있다. 한국경제학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 경제학자가 정책변화가 없다면 5년 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 국민과 정부가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 막연한 낙관론으로 대비를 소홀히 하다가 퍼펙트 스톰을 겪고 주저앉으면, 과거 일본이 겪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따뜻한 물에서 삶은 개구리(溫水煮蛙, 온수자와)”라는 말이 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에 넣으면 바로 뛰쳐나오지만, 찬물 속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죽는다. 닥쳐올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멸망하는 온수자와의 운명은 피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경제위기를 국민과 정부가 힘을 합쳐 다른 어느 국가보다 잘 대처하고 빠르게 극복했다. 정부가 국내 위험 요인을 미리 제거하고 효과적인 재정·통화·금융·산업의 정책 조합(policy mix)으로 외부 충격에 대응하면, 폭풍우가 와도 한국 경제가 순탄하게 운항할 수 있다. 5월에 새로 출범할 정부는 역량 있는 경제팀과 효과적인 정책으로 경제를 안정적으로 지속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