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우크라이나의 비극과 한반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1994년 필자는 모스크바에서 크림반도의 수도 심페로폴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일국(一國)에 의한 한반도 군사점령은 반대한다는 미(美)·소(蘇)의 양해가 이루어진 곳, 그래서 남북 분단의 빌미가 된 것으로 알려진 얄타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행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필자가 탄 침대칸의 동승자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우크라이나 국적 러시아인이 크림반도의 소유권을 두고 언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나중엔 옆 침대칸의 승객까지 합류해 다투다 필자까지 끌어들였다. 당신이 객관적 위치에 있으니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25시간을 꼬박 새우면서 크림반도,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복잡성을 강제로(?) 배워야 했다.

얄타 주민의 삶은 척박했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달러로, 소련 말기보다 40%나 감소했고 러시아의 절반에 훨씬 못 미쳤다. 필자가 머문 민박집을 비롯해 얄타 주민 가정에는 물이 하루 한 시간밖에 공급되지 않았다. 한국식 요리법이라며 맵게 버무린 당근을 팔던 장마당 아주머니는 한 달에 10달러로 온 가족이 먹고살아야 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우크라이나 국적의 러시아인 승객이 왜 크림반도를 러시아 소유로 되돌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국가건설의 지체가 비극의 시작
국민소득 1989년의 절반에 불과
장기적 지원 실패한 서방도 책임
자강없이는 한반도 지킬 수 없어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의 지체에서 시작됐다. 2004년 오렌지 혁명이 일으킨 변화는 불행히도 너무 늦게 시작됐으며, 소련 붕괴부터 유로마이단(유럽광장) 혁명이 일어난 2013년까지 잃어버린 20년의 왜곡은 너무 깊었다. 부패한 정치인과 엘리트들이 올리가르히(독과점 기업집단)와 결탁해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미루는 사이, 심각한 경제난이 사회갈등과 정치 불안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경제위기를 심화시켰다. 반면 동유럽과 발트 3국은 신속한 체제 이행으로 경제난을 극복하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었다. 심지어 러시아와 비교해서도 우크라이나는 자본주의 도입 면에서 크게 뒤처졌다.

우크라이나는 국가건설의 핵심인 경제발전에서 실패했다. 평화로운 시기에 우크라이나만큼 경제가 침몰한 국가는 거의 없다. 소련 말기부터 10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실질국민소득은 60% 넘게 감소했다. 그 후 회복 추세를 보였지만 아직도 1989년 수준의 절반을 넘는 정도다. 소련 시기 평균 가계소득은 러시아의 85%였지만 지금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1989년 우크라이나 인구 중 22%를 차지했던 러시아인 상당수가 러시아의 통치를 원했을 법도 했다. 심각한 경제위기는 인구 감소로 이어져 1989년 5200만 명이었던 인구는 지난 30년 동안 800만 명이나 줄었다. 우크라이나는 국가건설의 또 다른 핵심인 공정한 제도 확립에도 실패했다. 2010년 유럽부흥개발은행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법제도를 신뢰한다는 사람들은 10%에 그쳐 체제이행국 중 최하위였다.

서방도 책임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1990년대 초반부터 지적됐다. 하지만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장기적 관점에서 지원하기보다 점차 잊는 쪽을 택했다. 1990년대 러시아의 국력이 쇠퇴하자 자만에 빠져 동유럽을 사회주의 위성국으로 만든 소련의 전력을 망각했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1인당 공적개발원조는 폴란드의 30%도 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짐은 무거웠으나 서방은 그 짐을 덜어주는 이웃이 되지 못했다. 역사의 종언이란 달콤한 가설에 빠져 역사의 귀환이란 경험적 법칙에는 눈을 감았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경제발전에 실패한 외로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속국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가 일으킨 전쟁은 우크라이나인의 국가건설 의지를 불타오르게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한반도 문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강대국은 한반도 상황을 현 상태로 유지만 하려 할 수 있다. 미·중 대립이 격화되고 서방과 러시아의 충돌이 진행되는 현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의 잃어버린 20년처럼 나중에 큰 위기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경제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안보의 버팀목도 경제다. 경제위기는 외교력의 약화뿐 아니라 안보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 특히 한반도는 세계질서의 재편을 꿈꾸는 권위주의 강대국,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북한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한국 외교는 우리 역사와 혼을 담아야 한다. 얄타의 비극을 체험한 우리가 어떻게 우크라이나의 눈물을 외면할 수 있나. 이익만이 아니라 정체성을 담은 외교를 해야 타국의 존경과 우방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에도 부합한다. 한국은 얄타에서 논의됐던 예전의 코리아가 아니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으로 자강(自强)하지 못하면 이 위태로운 세계에서 한반도는 다시 눈물을 흘려야 할 수도 있다. 다음 대통령에게 이 엄중한 과업이 주어져 있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