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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세계최악 일본…첫 여성 노총회장은 '춘투' 벼르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일본의 성평등 수준은 세계 최악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3월 세계경제포럼(WEF) 성 격차 조사에서 일본은 156개국 중 120위(한국은 102위)였다. 일본 여성은 직장에서도 임금 차별과 성폭력 등 이중고를 겪지만, 토로할 곳은 많지 않다. 남성 위주 기존 노동조합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일본 최대 노동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連合·렌고)가 첫 여성 회장을 추대한 건 충격적 뉴스였다.

일본 최대 노동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連合·렌고)의 첫 여성 회장 요시노 토모코. AP=연합뉴스

일본 최대 노동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連合·렌고)의 첫 여성 회장 요시노 토모코. AP=연합뉴스

그 주인공이 요시노 토모코(芳野友子ㆍ56) 회장이다. 사실 요시노 회장이 취임한 지난해 일본 노동계의 위상은 한층 꺾여 있었다. 1970년대만 해도 30%가 넘던 노조 가입률은 70년대 에너지 위기와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현재 17%로 줄었다. 비정규직 비율까지 80년대 17%에서 현재 37%로 늘면서 ‘정규직 보호’에 초점을 둔 노조의 영향력도 크게 줄었다. 그사이 65세 미만 여성 노동자는 20% 늘어 비정규직의 절반이 됐다. 여성 노동계가 렌고 최초의 여성 회장에게 더욱 기대를 거는 이유다.

“기업 아닌 산업 기반 노조에 더 투자”

요시노 회장은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렌고의 모든 활동 부문 중에서 성 평등 문제가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며 “모든 회원사들에 ‘진짜 성과를 보여달라’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등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많은 부문에 집중해야 한다”며 “렌고가 기업이 아닌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노조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토모코 요시노 렌고 회장. AP=연합뉴스

토모코 요시노 렌고 회장. AP=연합뉴스

요시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4년 재봉틀 제조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일본에서 평등고용기회법이 통과되면서 그가 받던 임금이 대폭 인상됐다. 그제야 여성들이 얼마나 열악한 대가를 받으면서 일했는지 알게 됐다. 정규직으로 제조산별노조(JMA)에 자동 가입하면서 노동계에 발을 들였다. 1988년 20명으로 구성된 회사 노조 집행위원회의 첫 여성 집행위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노조 활동에 나섰다.

이후 성 평등 문제에 천착하던 그는 렌고 도쿄지부를 거쳐 렌고 본부까지 진출해 여성위원회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정작 렌고 회장직을 제안받았을 땐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다. 일본 대기업 등 내로라하는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 700만명을 대표하는 렌고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회장직을 수락한 건 “이 기회를 저버린다면 그동안 함께 일한 여성 동지들에 대한 배반”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요시노 회장 취임을 두고 일각에선 ‘꼭두각시’라는 비난도 나왔다. 요시노를 가장 잘 아는 이로 꼽히는 렌고의 치아키 사이토 도쿄지부장은 이에 대해 “웃기는 이야기”라며 “요시노 회장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해보라”고 응수했다. “그는 좋든 싫든 생각한 건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라면서다.

정부 “3% 인상” 제시 속 ‘춘투’ 첫 시험대

요시노 토모코 렌고 회장이 지난해 10월 22일 일본 외신기자 클럽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요시노 토모코 렌고 회장이 지난해 10월 22일 일본 외신기자 클럽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렌고 회장으로서 요시노의 첫 시험대는 올봄에 진행될 노사임금 협상(春鬪·춘투)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분배를 강조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을 내걸고 올해 3% 임금 인상을 목표로 제시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렌고 신년회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NYT는 이와 관련, “(3% 인상은) 비현실적인 목표지만, 모든 눈은 요시노 회장에게 쏠려 있다”고 했다. “이미 주요 동맹인 일본 공산당과 거리 두기에 나섰다”면서다.

어떤 때보다 일본에 노동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건 일본 제2의 노동단체인 전국노동조합총연맹(젠로렌)까지 양대 노조의 수장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양측이 이견을 어떻게 좁힐지는 관건이지만, 그 상징성만으로도 노동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20년 취임한 오바타 마사코 젠로렌 회장은 NYT에 “우리는 이 나라의 변하지 않는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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