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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대디에 반해 바다 건넌 그…"女 안보여?" 당찬 영부인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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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문제가 된 아이슬란드 일간지 모르군블라디드 1면 사진. 엘리자 리드 아이슬란드 퍼스트레이디는 자신에 대한 설명을 쏙 뺀 이 기사에 대해 “여자도 있다”(#dowomenexist)고 꼬집었다. [사진 페이스북]

지난해 10월 문제가 된 아이슬란드 일간지 모르군블라디드 1면 사진. 엘리자 리드 아이슬란드 퍼스트레이디는 자신에 대한 설명을 쏙 뺀 이 기사에 대해 “여자도 있다”(#dowomenexist)고 꼬집었다. [사진 페이스북]

 지난해 10월 아이슬란드의 보수 일간지 모르군블라디드 1면을 장식한 사진. 한 여성과 남성이 악수하고 다른 남성이 그 뒤에서 웃고 있었다. 악수한 남녀는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세자와 엘리자 리드(46) 아이슬란드 퍼스트레이디이고, 뒤에서 웃는 남자는 구드니 요하네손(54) 대통령이다. 하지만 사진 설명에는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소개는 없었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에서 퍼스트 레이디 본인의 반격은 이랬다. “여자도 있습니다.” (#dowomenexist)

아이슬란드는 대표적인 성 평등 국가다. 1980년 직접 선거로 선출된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을 배출했고 2009년 이후 세계경제포럼 ‘성격차지수(GGI)’ 1위를 내준 적이 없다. 지난해 9월 총선에서 당선자 중 절반에 가까운 48%가 여성이다. 아이슬란드는 총리가 실권을 갖는 의원내각제로,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지만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만큼 그 상징성은 작지 않다.

엘리자 리드 아이슬란드 퍼스트레이디. [사진 페이스북]

엘리자 리드 아이슬란드 퍼스트레이디. [사진 페이스북]

이런 아이슬란드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무엇이 아이슬란드를 위대하게 만드는가? 영부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리드의 책 『스클라카르의 비밀: 아이슬란드의 위대한 여성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 출간 소식을 전하면서다. ‘스클라카르’는  아이슬란드의 뛰어난 여성을 의미하는 고대 아이슬란드어다.

사랑 따라 아이슬란드 정착한 캐나다인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남편 구드니 요하네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오른쪽)과 함께한 리드. [사진 페이스북]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남편 구드니 요하네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오른쪽)과 함께한 리드. [사진 페이스북]

리드는 토론토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에서 자란 그는 27살이던 2003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 중이던 “곱슬머리 바이킹 싱글 대디”에게 반했다. 전처에게서 낳은 딸을 둔 남자를 따라 무작정 연고도 없는 아이슬란드로 건너가 이듬해 결혼했다. 그 상대가 요하네손 대통령이다. 현재 아이 넷을 키우고 있다.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면서 프리랜서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2014년 아이슬란드 작가 리트리트(IWR)를 공동 창립했다. IWR가 매년 세계의 작가들을 초청해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일주일간 진행하는 워크숍은 작가들의 세계 최고 행사로 꼽힌다. 아이슬란드 언론에서 여러 차례 ‘올해의 인물’로도 선정된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역사학 교수인 남편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인생은 남편의 갑작스런 정계 진출로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2016년 당시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총리가 역외 탈세 혐의로 사임하고, 20년간 대통령직을 지킨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의 부인 도리트무사이프 영부인까지 조세회피처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보유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다. TV에서 정치평론을 하던 무명의 정치신인 요하네손은 출마선언 직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그해 8월 아이슬란드 최연소 대통령이 됐다.

“남편의 액세서리로 보이지 않겠다”

엘리자 리드 아이슬란드 퍼스트레이디가 최근 ‘스클라카르의 비밀: 아이슬란드의 위대한 여성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출간했다. ‘스클라카르’는 아이슬란드의 뛰어난 여성을 의미하는 고대 아이슬란드어다. [사진 페이스북]

엘리자 리드 아이슬란드 퍼스트레이디가 최근 ‘스클라카르의 비밀: 아이슬란드의 위대한 여성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출간했다. ‘스클라카르’는 아이슬란드의 뛰어난 여성을 의미하는 고대 아이슬란드어다. [사진 페이스북]

리드는 영부인이 된 이후 여성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2019년엔 공식 페이스북에 ‘세계 지도자의 아내는 배우자와의 해외순방을 거부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G7 정상회담에서 휴양을 즐기는 배우자들을 비판한 가디언의 기사를 인용하며 “나는 남편의 액세서리로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고 했다. “독립적이고 지적인 여성들이 남편의 정치적 의제 소품으로 전락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면서다.

이런 신념은 세계 정상 무대에서 행동으로도 보여줬다. 지난 2019년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부와의 회담에선 여성의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흰색 정장과 동성애자를 지지하는 무지개색 팔찌를 착용해 주목받았다. 남편 요하네손 대통령 역시 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무지개 팔찌를 착용했다. 리드는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19년 유엔 세계여성의 날 수상자로 선정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리드의 책에서 다음 부분을 주목했다.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민자, 유색인종, 장애인, 성 소수자 여성을 포함한 그 누구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 양성 평등이 결국 남녀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남성 동지들과 힘을 합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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