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비판한 죄?” 3년 투옥 ‘인권운동가’ 사우디 공주 풀려나

중앙일보

입력 2022.01.11 16:06

2017년 4월 12일 미국 워싱턴 DC의 중동연구소에서 중동 여성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는 바스마 빈트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공주. AFP=연합뉴스

2017년 4월 12일 미국 워싱턴 DC의 중동연구소에서 중동 여성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는 바스마 빈트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공주. 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정책을 공개 비판하다가 돌연 체포됐던 공주가 3년 만에 석방됐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9일(현지시간) 바스마 빈트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58) 사우디 공주가 지난 6일 풀려났다고 밝혔다. 단 바스마 공주가 심장 질환 치료를 위해 출국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바스마 공주는 지난 2019년 3월 1일 병원 치료를 위해 스위스 방문을 준비하던 중 딸 수후드(30)와 함께 사우디의 자택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공주의 가족은 체포 한 달 후에야 공주와 접촉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주 측 헨리 에스트라망 변호사는 “두 모녀는 모호한 ‘형사 범죄’ 명목으로 리야드 근처 알 하이르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공식 기소되거나 재판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공주는 현재는 딸과 함께 자택에 머무르고 있다고 변호사는 전했다.

사우디 법 제도 비판한 인권운동가

2019년 3월 돌연 체포됐다가 3년 만에 석방된 사우디아라비아 바스마 공주. 사진은 2017년 4월 모습. AFP=연합뉴스

2019년 3월 돌연 체포됐다가 3년 만에 석방된 사우디아라비아 바스마 공주. 사진은 2017년 4월 모습. AFP=연합뉴스

바스마 공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2대 국왕인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1902~1969)가 실각하기 직전 115번째로 태어난 막내다. 어머니와 함께 레바논과 영국, 미국, 스위스 등에서 자랐고, 내셔널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사회경제학 석사 학위를 땄다. 1988년 결혼해 다섯 자녀를 낳은 후 2007년 이혼했다. 그해 당시 국왕의 승인을 받아 사우디 왕실 여성 최초로 잡지 표지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사우디에서 레스토랑 체인 사업을 했고 미디어와 케이터링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왕족 중에서도 드문 활동가이자 인권운동가다. 꾸준히 샤리아법에 근거한 사우디의 법 제도를 비판했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채택을 요구해 왔다. 그는 2013년엔 ‘제4의 길 법칙’(The Fourth Way Law)을 주창했다. 균형적인 삶의 4대 요소로 안보와 자유, 평등, 교육을 내걸었다. 이 주장은 2014년 EU 의회와 미국 의회가 채택했고 2016년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는 “새로운 기초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라며 그중에도 ‘안보’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2018년 BBC와의 인터뷰에선 무함마드 빈 살만(37·MBS) 왕세자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가 추진하는 ‘비전 2030’은 그 비전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고립시킨다”면서 그를 비판했다. 무함마드 왕자는 2016년 4월 경제사회 개혁안 ‘비전 2030’을 발표했고, 이는 2018년 6월 여성의 운전 허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바스마 공주는 “언론은 여성의 운전을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는데, 운전이 여성의 자유나 권리를 뜻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빈살만 왕세자 비판 후 구금돼”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6월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다. 당시 기념행사에 참석한 현지 여성의 모습. EPA=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6월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다. 당시 기념행사에 참석한 현지 여성의 모습. EPA=연합뉴스

바스마 공주가 돌연 체포된 것도 당시 인터뷰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빈살만 왕세자는 2017년 왕세자에 오른 이후 각종 개혁을 추진하면서 반대파를 가혹하게 잡아들였는데, 바스마 공주의 이 인터뷰가 결정적으로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후문이다. 당초 왕위 계승 1순위였다가 사실상 쫓겨난 빈 나예프 왕세자 역시 퇴임 직후 돌연 체포됐다가 2020년 3월 석방됐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궁전 내 전자 기기도 없는 독방에서 사실상 구금돼 있으며 수감 후유증으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스마 공주는 지난 2020년 트위터에 “나는 잘못한 게 없다”며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MBS 왕세자를 향해 석방을 호소했지만, 글은 돌연 삭제됐다. 바스마 공주의 가족은 지난 2020년 유엔에 보낸 탄원서에서 “권력 남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가 수감됐다”며 “빈 나예프 왕자의 측근으로 분류된 것도 구금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정부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유엔 주재 사우디 대사는 유엔 측에 “불법 출국을 시도한 혐의로 기소됐다”고 밝혔다고 한다.

바스마 공주 모녀가 석방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우디 인권단체 ALQST는 8일 트위터에 “바스마 공주는 잠재적으로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태에서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에스트라망 변호사는 “왕실 법원과 MBS 왕세자가 모녀 석방을 암묵적으로 승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공주의 건강은 양호한 편이지만 의료진의 검진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