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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제로’ 후유증? 공기업 정규직 신규채용 반토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이 지난해 정규직 신규 채용을 크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임임원 신규 채용은 되려 늘어 대조를 이뤘다.

8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공공기관의 경영정보 공시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공기업(시장형ㆍ준시장형) 35곳의 일반 정규직 신규 채용 인원은 5917명이었다. 2019년(1만1238명)에 비해 절반 가량(47.3%)이 줄어든 것이다. 조사 대상 3분의 2(23곳)에서 신규 채용인원이 줄었다.

35개 공기업 신규채용 규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35개 공기업 신규채용 규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신규 채용인원이 많이 줄어든 공기업은 한국마사회ㆍ강원랜드ㆍ그랜드코리아레저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곳이다.

한국마사회는 2019년 일반 정규직 41명을 채용했으나, 2020년에 1명으로 급감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아예 1명도 없었다. 한국마사회는 무기 계약직 채용도 480명에서 98명으로 382명 감소했다. 강원랜드와 그랜드코리아레저 역시 같은 기간 일반 정규직 신규 채용이 154명, 58명에서 각각 3명으로 급감했다.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로 ‘해체 수준’의 조직 혁신을 약속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정규직 신규 채용이 2019년 664명에서 2020년 360명으로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7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경영 악화와 기관 내홍 등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수익이 급감하고, 내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채용을 줄이거나 채용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공기업이 많아져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총대를 멘 후유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리한 정규직 전환으로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새로운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가장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전은 지난해 1047명을 신규채용했다. 2019년(1772명)에서 40.9%가 줄었다. 역시 정규직 전환에 적극적인 한국철도공사도 지난해 1426명을 신규채용했는데 이는 2019년 3964명의 3분의 1(36%) 수준이다.

김태기(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공기업의 경영 실적이 크게 악화됐는데, 반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라 인건비는 늘어나다보니 기업 입장에선 신규 채용할 여력이 줄어든 것”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당시 혜택을 본 사람들만 좋았지, 청년들의 취업의 문을 좁게 만든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큰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자료: 추경호 의원

자료: 추경호 의원

그는 이어 “정부가 기존 구성원 간의 갈등, 늘어난 인건비 부담 등에 대한 문제를 간과하고 이를 강행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공기업 채용 감소와 정규진 전환 정책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기업의 정규직 전환은 기존에 일하시는 분들의 고용형태를 전환하는 것”이라며 “공기업의 신규 채용 규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상임임원 신규 채용은 늘어

반면 공기업은 직원 신규 채용을 줄이면서도, 상임임원 신규 채용은 늘렸다. 공기업 35곳의 상임 임원 신규 채용 인원은 2019년 45명에서 지난해 91명으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정권 말 ‘알박기’ 인사가 적지 않다는 게 리더스인덱스의 분석이다. 상임임원의 임기가 2~3년임을 감안하면 올해 새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

리더스인덱스는 “현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면서 공기업 채용이 증가하다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2년 연속 급감했다”며 “반면 정권 말기에 임기가 보장된 상임 임원의 ‘알박기’ 인사는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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