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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커피하우스는 소비 아닌 문화·사색의 공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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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22면

POLITE SOCIETY

초콜릿케이크가 유명한 비엔나 카페 자허(Cafe Sacher). [사진 박진배]

초콜릿케이크가 유명한 비엔나 카페 자허(Cafe Sacher). [사진 박진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우리에게 세 곳의 카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책이나 신문을 읽으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카페,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카페, 그리고 연인과 가는 카페. 커피를 팔고 마시는 공간은 카페, 커피숍, 커피하우스 등으로 불린다. 17세기 말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 베니스, 비엔나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 커피하우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이 도시들마다 1000여 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초창기에는 커피를 주로 팔았고, 후에는 간단한 식사나 주류도 첨가됐다.

1980년대에 현대식 커피숍 등장

전통적으로 커피하우스의 내부에는 ‘커뮤니티 테이블(community table)’로 불리는 커다란 단체석이 놓여 있었다. 단골들은 이 테이블에 앉거나 주변에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을 즐겼다. 독서와 토론은 방문객들의 지적 성장을 도와주었다. 여기서의 대화를 기반으로 소식지가 만들어지고, 더 발전해 신문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이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 지금도 유럽이나 미국의 카페에는 입구 가까운 쪽에 단체 테이블을 배치하는 곳이 꽤 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초창기에 간이 우체국의 역할도 했다. 자루를 걸어 놓고 일정량의 편지가 모이면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런 통신의 기능은 꽤 오랫동안 커피하우스의 문화로 이어져 왔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1980년대 신촌 독수리 다방 입구의 메모판도 유사한 기능을 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약속 시간과 장소, 간단한 메모를 교환하는 원조 아날로그 메신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커피하우스 전통은 세계로 전파됐다. 미국은 뉴욕, 보스턴, 시애틀과 같은 보헤미안 도시를 중심으로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왔다. 특히 ‘옆 테이블의 대화에만 귀를 기울여도 배울 게 있고 유식해진다’는 미국 대학가의 커피하우스는 자유롭지만 특유의 지적 분위기를 창출했다. 패전 직후의 일본에서 커피는 소수만이 먹을 수 있는 기호 음료였다. 당시에 일본의 부유층 젊은이들은 도쿄 긴자(銀座)의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긴자거리를 배회하곤 했다. 이를 ‘긴부라(銀ブラ·긴자거리를 부랴부랴 흐느적거리며 걷는다는 표현)’라고 부른다. 요즈음에도 일본 도시의 골목에는 수십 년 된 커피하우스들이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비엔나 카페 첸트랄(Cafe Central). [사진 박진배]

비엔나 카페 첸트랄(Cafe Central). [사진 박진배]

우리나라에는 커피가 비교적 늦게 들어왔다. 그래도 1950년대 이미 전국에 3000여 개의 다방이 있을 정도로 성행했다. 초창기에는 인스턴트커피에 설탕과 분말 크림을 첨가해서 마시는, 오늘날 ‘다방 커피’라고 불리는 스타일이 일반적이었다. 실내 한 편에 어항이 자리를 잡고, 의자는 흰색 커버로 덮여 있었으며, 동전을 넣고 운수를 점치던 기계 겸 재떨이와 팔각성냥이 테이블에 놓인 모습이 전형이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1980년대에는 신촌, 방배동, 압구정동 등지에 고급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카페에는 비엔나커피(크림을 얹은 나름의 고급 커피로, 원래의 명칭은 아인슈페너(Einspänner)다)라는 메뉴가 있었다. ‘비엔나(Vienna)’라는 도시와 커피가 연결되며 우리에게 각인된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비엔나의 첫 커피하우스는 1683년 터키 군이 남기고 떠난 원두 자루를 전해 받은 상인에 의해서 시작됐다. 그 상호가 ‘블루 보틀(Blue Bottle)’. 오늘날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한 유명 글로벌 커피체인이 도입한 이름이다. 340년의 역사만큼 비엔나에는 유서 깊은 커피하우스가 즐비하다. 작가들의 단골이던 카페 첸트랄(Cafe Central), 구스타브 클림트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무제움(Cafe Museum), 초콜릿 케이크가 유명한 카페 자허(Cafe Sacher) 등이 대표적이다. 프로이드, 카프카 등 비엔나 커피하우스를 즐겨 찾던 고객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계 음악의 수도(首都)답게 요한 슈트라우스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가 커피하우스에서 연주를 했다. 유명 인사들이 많이 출입했지만 귀족적이거나 폐쇄적인 곳은 아니었다.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서민들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1899년 오픈한 비엔나 카페 무제움(Cafe Museum)은 구스타브 클림트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애용되던 커피하우스다. [사진 박진배]

1899년 오픈한 비엔나 카페 무제움(Cafe Museum)은 구스타브 클림트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애용되던 커피하우스다. [사진 박진배]

비엔나의 커피하우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샹들리에 조명 아래 흰 대리석 테이블, 토네트(Michael Thonet)의 곡목(曲木)의자가 배치된다. 공간의 한편에는 여러 언어로 인쇄된 신문들이 놓여 있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웨이터는 정장이나 간혹 턱시도 차림이고, 커피는 물 한잔과 함께 제공된다. 커피 맛을 보기 전에 입 안을 헹구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저녁 시간이면 피아노 연주를 하는 곳도 있다. 분위기에서 이미 ‘우리는 커피를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지 안다’는 진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격(格)에 맞게 행동하기를 은근히, 하지만 친절하게 강요한다.

비엔나 시민은 모두 자신의 커피하우스가 있다. 부유층들은 집 안에 ‘팔러(parlor)’와 같이 접객용 공간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커피하우스가 연장된 거실이자 응접실, 서재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간단한 식사는 물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케이크도 즐길 수 있다. 종이컵은 없다. 이 도시의 커피 문화는 아침에 픽업해서 일터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이동하면서 마시는 것도 아니다. 오래 앉아 있어도 괜찮다. 커피 한잔에 몇 시간 동안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음료는 버무스나 와인으로 바뀌어 있다. 웨이터들은 눈치를 주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손님을 살피다가 필요할 때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골손님은 ‘스탐가스트(stammgast)’라고 불리는데, 보통 웨이터들은 이들의 메뉴와 선호하는 자리를 잘 알고 있다. 그 자리를 ‘예약석’으로 미리 맡아 두는 경우도 많다.

1980년대에 들어서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음료를 기반으로 만든 현대식 커피숍이 등장했다. 밀라노의 커피숍을 벤치마킹한 미국의 스타벅스는 글로벌하게 스타일을 통일해버렸다. 이전에 존재하던 각 나라 고유의 카페들은 올드 패션으로 취급되기 시작했고, 줄지어 문을 닫았다. 고급 원두를 사용한 커피를 소개했지만, 과거의 커피문화를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렀다. 이건 단지 책이나 신문이 노트북으로 바뀌고 커피잔이 종이컵으로 바뀐 것만은 아니었다.

웨이터, 단골 예약석 맡아두기도

암스테르담의 브라운 카페(Brown Cafe). [사진 박진배]

암스테르담의 브라운 카페(Brown Cafe). [사진 박진배]

비엔나의 커피하우스도 예외 없이 이런 영향을 받았다. 2차대전 때 많은 커피하우스가 폭격에 파괴된 이후 다시 한 번 겪는 위기였다. 하지만 1983년 비엔나 커피하우스의 탄생 300주년을 맞으면서, 시(市)는 커피를 즐기는 문화를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켰던 자신들의 전통을 되살렸다. 옛 명성처럼 질(質)과 격(格)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2011년 유네스코는 비엔나 커피하우스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예다. 비엔나는 커피에 진심이다. 유네스코가 정의한 대로 ‘커피 한잔의 가격으로 공간과 시간을 경험하는 곳’이다.

비엔나의 커피하우스와 다른 커피숍들과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요즈음 커피 바(Coffee Bar)라고 불리는 형태의 커피전문점은 그 최상의 맛을 축출하고자 노력한다. 원두 구입, 로스팅, 드립 방식 다 좋지만 손님한테 제공하는 건 결국 한잔의 음료가 전부다. 손님을 위한 마음이나 환대, 세심한 배려는 적다. 거기에 어떤 경험이나 문화가 존재할 리 없다. 커피라는 음료만 판다면 과자를 파는 편의점과 다를 게 없다. 그저 커피를 종이컵에 들고 나와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먹는 것만 못하다. 그것이 커피숍과 커피하우스의 차이점일 것이다.

스페인 말라가(Malaga) 카페 센트럴의 그래픽. [사진 박진배]

스페인 말라가(Malaga) 카페 센트럴의 그래픽. [사진 박진배]

커피하우스는 시민 사회활동의 일상이었다. 스스로 지식인이 될 권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방문해서 글을 읽고 생각을 교환하던 현장이었다. 여기에서 정치와 철학이 논의되고 문학이 창작되며, 예술적 아이디어와 영감이 발표됐다. 오늘날의 커피숍은 각자 고립된 개체가 들려서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쳐다보는 건조한 곳이다. 문화는 없다. 한쪽 구석에서 글을 쓰거나 종이에 스케치하는 고객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포용적이고 쿨한, 커피숍이 아닌 커피하우스를 방문해서 머물고 싶다. 커피는 물질이지만 그 문화는 무형의 유산이다. 커피하우스는 소비하는 곳이 아니고 생각하는 곳이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뉴욕 아이디어』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 ‘민가다헌’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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