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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켓 필요한 옷차림, 뭘 입느냐보다 스타일 중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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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호 27면

POLITE SOCIETY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페 라 비에라(La Biela). 정장 차림으로 카페를 찾아오던 노신사 단골손님의 밀랍인형이 설치돼 있다. [사진 박진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페 라 비에라(La Biela). 정장 차림으로 카페를 찾아오던 노신사 단골손님의 밀랍인형이 설치돼 있다. [사진 박진배]

옷과 헤어스타일, 액세서리의 유행을 표현하는 패션은 내가 선택해서 구입하고 매일 변화를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의, 식, 주 중에서 음식은 자신이 선택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집이나 인테리어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설계하고 꾸밀 수 있다. 하지만 “평생 가구를 세 번 바꾸면 팔자가 좋은 여자다”라는 말처럼 그 빈도는 다소 제한된다. 패션의 본질은 보이는 것이다. 속된 말로 ‘뽀다구’다. 우리에게 수백 가지의 다른 기능을 위한 수백 벌의 옷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옷은 넘쳐나고, 패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중 하나가 돼 있다.

옷을 갖추어 입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본적 예의이자 통념이다. 한편으로는 나를 존중하는 행위이고, 또 개성의 발현이다. 새로 만나는 사람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인도 된다. 타인과의 교감은 패션의 또 하나의 속성이다. 어떤 옷을 입고 상대를 만나는 상황에서 오늘의 기분과 마음가짐을 전달할 수 있다. 여기에 약간의 사회적 강제성과 규범이 도입된다. ‘사회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직장, 교회, 공연장, 레스토랑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적합한 복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상황과 장소에 맞지 않게 입는 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의 결여가 될 수 있다.

70년대엔 야구장 갈 때도 정장 입어

스페인의 시골 마을. [사진 박진배]

스페인의 시골 마을. [사진 박진배]

식사예절처럼 패션에도 약간의 에티켓이 필요하다. 흔히 드레스 코드라고 부른다. 남녀가 옷을 다르게 입는 것부터, 다른 문화권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을 망라한다. 이는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을 의미하고 사회적 메시지의 전달이기도 하다. 개인의 태도나 지위, 직업까지도 표현한다. 드레스 코드에는 다소 민감한 부분이 있다. 편하다고 막 입거나 또는 반대로 지나치게 주목받게 입는 것도 실례다. 유행하는 트렌드가 꼭 자신과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과시는 불필요하지만 안목은 존중받는다. 무엇보다 패션이 사람을 컨트롤하게 하지 말고 사람이 옷을 입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형식을 추종하기보다 ‘즐거움’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가장 좋다.

과거 귀족들이 그랬듯이, 어떤 날은 하루에도 옷을 몇 번 바꾸어 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흔히 말하는 T.O.P.(Time, Occasion, Place)에 맞추어 의상으로 격식을 차리고 스타일을 갖추는 행위다. 1970년대, 비행기를 한 번 타는 게 대단한 일이었을 때는 모두 정장을 입었다. 음악회를 갈 때도, 야구장을 갈 때도 정장이었다. 이런 문화는 1980년대 말까지 유지되다가 21세기 들어서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St. Andrews) 대학생들. 1970년대부터 젊은이들은 패션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 [사진 박진배]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St. Andrews) 대학생들. 1970년대부터 젊은이들은 패션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 [사진 박진배]

예전에 젊은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는 젊은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패션을 주도하는 역할도 했다. 패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반전 운동, 히피, 팝송, 그리고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으로 이어지는 젊은이들의 문화는 캐주얼 패션을 대세로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편안함을 우선시하면서 패션에서는 모자와 코트, 드레스가 사라졌다. 그 경향은 현대까지 이어졌고 세계로 확산됐다.

파리 ‘르 뫼리스(Le Meurice)’ 레스토랑. ‘사회적’ 특성 때문에 직장, 레스토랑 등의 장소에선 적합한 복장이 요구된다. [사진 박진배]

파리 ‘르 뫼리스(Le Meurice)’ 레스토랑. ‘사회적’ 특성 때문에 직장, 레스토랑 등의 장소에선 적합한 복장이 요구된다. [사진 박진배]

제한된 사회의 규율을 싫어하는 MZ세대는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큰마음 먹고 오랜만에 옷을 한 벌 장만하고, 아껴서 다려 입고, 세탁소에 맡기며 오래 입던 시절이 있었다. 흰색 옷이 누렇게 변색될까봐 신경 써서 보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에 패스트 패션이 시장을 주도하면서는 입고 싶은 옷을 구입해서 대충 몇 번 입고 버리는 풍토가 만연하다. 필요하면 그저 다시 사면된다는 생각이다. 버려진 옷은 쓰레기가 되고 환경 훼손을 초래한다. 또한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계절과 환경이 다른 온갖 장소의 패션을 실시간 바라본다. 한겨울에도 바닷가의 여름 패션을 보고 구매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SPA 브랜드들은 그런 대부분의 제품이 언제나 가능하도록 준비, 판매하고 있다. 계절별로 바뀌던 스타일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

뉴욕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매장의 한 청년. [사진 박진배]

뉴욕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매장의 한 청년. [사진 박진배]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등 IT업계의 대표들이 청바지를 입으면서 직원들이 따라 입었고, 비즈니스 업계의 드레스 코드마저 바뀌었다. 이제 미국에서 평소에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직업은 변호사와 자동차 판매원, 정치인과 부동산 중개인뿐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사람들은 점점 패션에서 형식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외식할 때 옷을 차려입고 나가던 비율은 90년대까지만 해도 50%가 넘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25%를 밑돌고 있다. 공연장과 학교, 사무실에서도 정장은 사라졌다. 그러면서 패션의 에티켓 역시 점점 느슨해졌다. 그나마 교회와 경마장, 드레스 코드를 지정한 특정 장소나 이벤트에만 남아있는 정도다.

요즘은 ‘패스트 패션’이 시장 주도

구찌(Gucci) 매장.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명품 브랜드들이 많이 탄생하고 큰 국가산업으로 자리 잡은 건 패션에 관한 생각과 문화가 기반이 된 것이다. [사진 박진배]

구찌(Gucci) 매장.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명품 브랜드들이 많이 탄생하고 큰 국가산업으로 자리 잡은 건 패션에 관한 생각과 문화가 기반이 된 것이다. [사진 박진배]

이탈리아를 방문해 보면 밀라노나 피렌체와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옷을 매우 잘 입는 것을 알 수 있다. 옷차림으로 쉽게 현지인과 관광객을 구분한다고도 한다. 이런 경향은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깨끗하고 잘 조화된 옷을 입은 세련된 사람들이 거리에 넘친다. ‘거울 앞에서 5분 이상 보내지 않은 것 같은’ 자연스러운 연출은 파리지엔느의 감각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운동복이나 슬리퍼 차림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은 없다. 이들은 도시의 경관을 사랑하며 사람도 도시경관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도시의 사람이 아름다우면 도시가 아름답다. 그리고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데 패션만한 것이 없다. 옷을 잘 입는 것이 생활화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명품 브랜드들이 많이 탄생하고, 큰 국가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문화가 기반이 된 것이다. 본인이 기분 좋고, 상대방의 눈과 기분도 좋게 만들고, 결국 우리의 세상을 예쁘게 만드는 일. 그래서 그 외모를 위한 패션이 수십조의 산업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에든버러(Edinburgh) 구도심의 노신사들. [사진 박진배]

에든버러(Edinburgh) 구도심의 노신사들. [사진 박진배]

간혹 커피숍이나 호텔에서 마주치는 멋쟁이 노신사나 잘 차려입은 숙녀들의 모습은 ‘멋짐’ 그 자체다. 막 입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패션은 타인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옷차림의 에티켓은 사실 간단하다. 자신에 맞는 옷과 조화, 거기에 조금 멋을 부려 약간의 액세서리 정도다. 명품을 걸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스타일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스타일은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이다. 구매하고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스타일은 유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목에서 나온다. 패션잡지 ‘바자’와 ‘보그’의 편집장을 지냈던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는 “스타일은 사람이다(Style is Person)”라고 말했다. 옷을 입은 외모에서 어떤 멜로디를 느낄 수 있다면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라이프’ 안에서 ‘스타일’을 찾는 것이다. 과시보다 우아하고, 유행보다 세련된 스타일은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한 투자고 가치다. 그것이 진정한 드레스 코드다.

“요란한 옷을 입으면 옷을 쳐다보지만, 우아한 옷을 입으면 사람을 쳐다본다.” - 코코 샤넬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뉴욕 아이디어』,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 ‘민가다헌’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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