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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불의·불법 알리려는 것, 공익제보자 신청하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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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05면

국민의힘은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부부와 배모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뉴시스]

국민의힘은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부부와 배모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의전을 둘러싼 비리 의혹의 특징은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사실관계가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법인카드로 소고기를 구입하거나 호르몬제를 대리 처방 받았다는 의혹 등은 제3자는 파악하기 힘든 내밀한 정보들이다. 이는 의혹을 제기하는 제보자 A씨가 김씨의 비서 업무를 한 경기도청 비서실 7급 별정직 직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A씨는 약 9개월(지난해 3~11월) 동안 경기도청 총무과 소속 5급 별정직이었던 배모(여)씨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와 사진 등을 근거로 자신이 겪은 일을 폭로했다.

배씨는 이 후보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2010년 8월부터 성남시장 비서실(7급)에 적을 올렸다. 당시 성남시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배씨는 비서실 소속이지만 다른 업무는 하지 않고 사실상 김씨만 담당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2018년 이 후보가 경기지사에 당선되자 별정직 5급으로 경기도청에 입성했다. 배씨의 부하 직원이자 비서 업무를 한 A씨는 그가 약 대리 처방·수령과 음식 배달, 장남의 퇴원 수속 등 김씨의 사적인 용무를 담당하는 ‘과잉 의전’을 사실상 지휘했다고 지목했다.

A씨는 배씨의 지시를 받아 수행한 김혜경씨 관련 심부름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지난해 4월엔 A씨가 개인카드로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한 정육식당에서 한우 11만8000원어치를 계산한 뒤 다음날 이를 취소하고 법인카드로 다시 결제했다. 12만원이라는 한도가 1인당 식사비(3만원)와 코로나19로 인한 제한 인원(4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경기도청 부속 의원에서 김씨의 호르몬제를 대리 처방받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배씨와 민주당 측은 “배씨 본인이 복용할 목적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A씨 측은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이 후보 집 앞에 문제의 호르몬제를 배달했다고 밝혔다. 배씨 측의 해명대로라면 폐경 후에 주로 사용하는 호르몬제를 A씨에게 김씨 이름으로 처방받아 김씨 집에 전달하도록 지시한 뒤 이를 배씨가 가로채 사용한 셈이 된다. A씨 측은 대리 처방 한달쯤 뒤 김혜경씨가 자기 이름으로 같은 호르몬제를 처방받았다며 처방전 사진을 공개했다.

김혜경

김혜경

A씨는 4일에도 지난해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 후보의 명절 인사를 챙기는데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배씨가 추석을 앞두고 A씨에게 “지사님 친척분들 배달해야 한다”고 지시하는 내용을 담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했다. A씨는 과일 등을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한 과일가게에서 샀다고 밝혔다. 이 가게는 지난해 경기도지사 명의로 ‘내방객 접대 물품 구입 경비 지출’ 등 4000만원이 넘는 업무추진비를 사용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은 “업무추진비가 아니라 이 후보의 사비로 추가 구매했고, 직원에게 직접 배송하라고 한 사실 또한 없다”고 해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A씨의 폭로 배경에 대해 “핵심 그룹에 자리를 잡지 못하자 나선 것으로 보인다”는 말도 나온다. 성남문화재단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A씨는 배씨의 권유로 지난해 초 별정직 7급으로 도청 비서실에 입성했다고 한다. 이 후보가 지난해 10월 지사직을 사퇴하면서 자동면직 처리됐다. 당시 별정직 비서관 등 10여 명이 동시에 도청을 떠났는데, 이들이 모두 이 후보 캠프로 갈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이 후보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책임 회피를 위한 흠집내기”라고 반발했다. A씨는 4일 입장문을 내고 “그 어떤 정치적 유불리나 특정 진영의 이익이 아닌 그저 특정 조직에서 벌어진 불의와 불법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김씨에 관한 사실을 제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저와 저희 가족은 심각한 불안과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큰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며 “선거에 저와 가족의 명예와 안전을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와 함께 언론에서 배씨와 통화한 음성 녹취파일의 방영·유포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A씨의 측근은 “이 후보 측 사람에게서 연락이 많이 와 너무 불안해해서 가족과 하루 한 번 거처를 옮기고 있다”며 “다음 주 월요일(7일)에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제보자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A씨가 용기를 낸 건 지켜줄 시민이 있다는 믿음에서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원희룡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은 “공무원이 지사 부인의 일을 일시적으로 수행해도 업무 위반인데 아예 전담 비서로 갖다 붙였다”며 “과잉 의전이 아니라 불법 의전이고 갑질 의전”이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김기현 원내대표는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만으로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공금 횡령죄 등의 범죄 혐의가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공세가 거세지자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대응 방안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단 적극적 해명을 통해 “김씨가 대리 처방이나 한우 구매를 직접 지시했다는 정황이 없다는 점을 밝히자”는 주장이 다수다. 반면 친문 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김 여사의 위법사실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국민 감정 차원에선 표를 잃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며 “선대위가 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당분간 김씨의 외부일정을 취소하고 여론 추이를 살필 계획이다. 민주당 선대위 소속 의원은 “만약 추가 폭로가 나오지 않으면 김 여사가 다음주 중 직접 유권자에게 사과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이날 “사실관계 확인과 함께 즉시 감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기된 의혹이 사실일 경우 이는 행정안전부 지침(자치단체장 배우자의 사적 행위에 대한 지자체 준수사항) 위반이 될 수 있다. 다만 의혹이 사실이라는 감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법적인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단체장의 배우자는 지방공무원법상 공직자에 해당하지 않아 징계 대상이 아니며 이 후보 역시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사퇴한 퇴직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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