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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넌덜머리나는 옛친구의 바람피운 얘기…쪼잔한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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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10) 

모임이 있어 아내와 서울에 다녀왔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자리였고, 아내는 재수 시절 종합반 친구들 모임이었다. 춥고 다급하던 재수 시절 친구들과도 우정이 쌓여 수십 년 후까지 만난다는 게 신기했다.

옛친구들과 만나면 소주에 고기 구워 먹으며 그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간이 흘러 서로 간에 공유할만한 점들은 하나둘씩 줄어들었지만,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예전 그 친구 그대로임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 박헌정]

옛친구들과 만나면 소주에 고기 구워 먹으며 그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간이 흘러 서로 간에 공유할만한 점들은 하나둘씩 줄어들었지만,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예전 그 친구 그대로임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 박헌정]

내가 만난 친구는 셋이다. 고등학교 때 거의 붙어 다녔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왁살스레 지냈거나 떠들썩한 추억이 많이 쌓인 것은 아니다. 그저 착하고 싱겁고 순진하던, 하지만 사는 곳과 생활양식이 엇비슷해 결국 한곳으로 모여든 순둥이들이다.

잠깐 소개하자면, 총무 역할을 맡은 쌀집 아들 상각이는 대학교 교직원이다. 학교 다닐 때는 점잖기만 한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사방팔방으로 호기심과 재주가 대단한 친구다. 요즘은 취미로 프로당구 심판을 본다고 한다. 밥 먹으면서도 꼼짝 않고 책만 들여다보던 오현이는 행시에 붙어 중앙부처에 근무한다. 이사관인지 부이사관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가 아는 공무원 중 가장 높다. 순발력 있고 허를 찌르는 조크와 부지런한 몸놀림이 특기인 광희는 단단한 중견기업 임원인데, 회사명이 ‘○○테크’여서 나 같은 문과는 충분히 설명 들었어도 이해가 쉽지 않다.

그동안 만남이 꾸준하지는 않았다. 총각 시절에는 자주 만나 술 마시고, 결혼할 때는 서로 품앗이하고(신붓감 구해주는 일부터 함진아비, 사회, 공항 라이딩 등), 아이들 어릴 때는 가족여행도 함께 다녔지만, 삶의 궤적이 달라지면서 점점 뜸해졌다. 이유는 따로 없다. 그저 각자 살기 바빠서 각자 열심히 사느라고 그랬다. 고등학교 친구를 수시로 만날 만큼 여유롭고 만만한 삶은 별로 없다. 언젠가 다른 친구와 통화하며 “왜 그렇게 연락 뜸하냐”고 했더니, 그쪽에서 “인마, 네가 먼저 연락 안 했잖아”해서 웃음이 나왔다. 먼저 연락하는 건 알겠는데 ‘먼저 연락 안 한다’는 웬 뚱딴지같은 개념인가 싶었지만, 명언이었다. 결론은 쌍방책임이다. 뜸했던 게 미안해 더 연락을 안 하게 되고 그러다가 끊기는 일이 빈번하다.

이 모임도 얼마 전부터 재개되었다. 소주에 돼지고기 구워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는 옛날 추억, 퇴직 얼마 안 남은 직장 이야기, 제2막을 어떻게 살지 고민, 자녀의 진학⸱취업…. 30~40년 전에 그랬듯이 이 개성 없는 모임에 걸맞게 그 어떤 특별함도 없는 주제다. 하루 두 개씩 도시락 까먹어가며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 넷은 그 모습 그대로 성장했고, 각자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아이 둘씩 낳고 열심히 살았으며, 그대로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학창시절을 복기해보면 우리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심성들이었다. 그래서 마음 편하다. 자아 강하고 활개 치고 온갖 멋을 다 부리며 모양내던 친구들보다 그저 순박하고 착실하고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하던 대기만성형 친구들이 지금껏 남아서 내 재산이 되고 있다. 다들 눈앞에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서 황소처럼 뚜벅뚜벅 걷다 보니 책임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이즈음에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 같다.

회사 친구가 전주에 일을 보러 왔다가 시간을 내어 잠깐 만났다. 누가 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를 잊지 않은 그로 인해 내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사진 정광식]

회사 친구가 전주에 일을 보러 왔다가 시간을 내어 잠깐 만났다. 누가 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를 잊지 않은 그로 인해 내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사진 정광식]

모임 끝나고 이튿날 내려오는데, 회사 친구 광식이가 결혼식이 있어 전주에 온다고 해서 잠깐 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친구’가 가능하냐고? 대학 동기라 서로 정답게 존중하며 지내며 20년에 걸쳐 서서히 친구가 되었다. 그는 지금 상무인데, 한때 기획실에서 같이 근무하며 나하고 경쟁 구도가 그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똑똑하고 회사에 대한 애정도 큰 것을 알았기에, 괜히 경쟁해봐야 내 인생만 피곤해지겠다 싶어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내가 한 발 뺐다. 그 결과 그는 유능하고 책임감 있게 조직에서 성공하고, 나는 내 계획대로 행복하게 산다. 정력과 감정을 헛되이 소진하지 않았으니 현명한 판단이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일이다.

그들 부부와 만나 커피 마시고, 집에 와서 과일 먹고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저녁을 대접하지 못하고 보내서 너무 미안했다. 누가 내게 찾아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잊히지 않고 있으니, 그들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런 일기 같은 내용을 쓰는 이유는 은퇴 전후에 어떤 친구를 만나 어떻게 교류할지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은퇴 후 시간 여유가 생기면 사람을 만나기도 쉽다. 그런데 옛친구를 반갑게 다시 만나 잘 노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거의 만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반갑게 만나보지만, 차츰 공통의 화제나 관심 분야가 없음을 느낀다. 습관적으로 그간의 자기 삶과 직장 이야기만 지루하게 늘어놓기도 하고, 가치관이나 정치적 견해가 완전히 대립할 때도 있고, 자신의 사회적 성취나 기준을 친구들 사이에 들이대려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친구들이 골프 얘기만 해서 따분하다고도 하고, 볼 때마다 자기 바람피우는 이야기를 자랑스레 떠벌리는 친구가 넌덜머리 난다는 사람도 있다. 학생 때처럼 거친 말투와 심한 장난기가 남아있는 친구, 학교성적, 싸움, 갈등처럼 불편한 기억을 되살리는 친구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 ‘그게 뭐 어떻냐? 쪼잔하게’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답을 어떻게 찾겠는가. 순식간에 흘러버린 ‘시간’ 탓이니, 해결책도 시간일 수밖에 없다. 예전 추억은 우리를 다시 뭉치게 해주지만 내가 살아온 것만큼 친구들도 파란만장했을 테고, 그래서 너나 나나, 우리는 전부 알게 모르게 꽤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다. 생판 초면보다야 낫겠지만, 새로 인연을 만들어나가는 것만큼의 신중함과 성의를 가지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만나자마자 등 후려치며 “야, 이 새끼야!” 하던 젊은 날의 괄괄한 성미는 잠시 가라앉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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