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대하소설로 재구성한 몽양 여운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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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혈농어수 상.중.하

강준식 지음, 아름다운책, 각 688쪽.680쪽.696쪽, 각 1만9800

이 책은 역사적 자료와 증언을 근거로 몽양의 일대기를 복원한 본격 '역사소설'이다. 10여 년 전인 1993년 '적과 동지'란 이름의 7권짜리 시리즈로 나왔다가 절판된 것을 내년 여운형 서거 60주기를 앞두고 복간한 것이다.

저자 강준식(59)씨는 20년 전 "민주화 이후 우리 민족에게 남은 과제는 통일"이라고 생각해 작품 구상을 시작했단다. 우리 역사에서는 묻혀 있던 좌우통합 운동의 전말을 추적한 것이다. 몽양은 그 중심에 있었다.

"3.1 운동의 불꽃을 지핀 당사자가 몽양입니다. 윌슨 대통령 시절의 찰스 크레인 특사를 만나 '조선도 민족자결주의가 가능하다. 독립할 수 있다'는 답을 들은 뒤 상하이의 젊은이들을 모아 최초의 현대 정당인 신한청년당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조선 대표로 파견했다. 그게 도쿄 유학생들의 2. 8 선언, 조선 3.1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작가는 몽양이 상하이 임시정부의 실세였다고도 말한다.

"이전엔 만주가 독립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3.1 운동이 실패하자 몽양이 있는 상하이에 운동가들이 몰려왔지요. 30대 초반이던 몽양은 임정 뒷바라지를 다 하고도 어린 나이라 외교부 차장이란 작은 감투만 썼을 뿐입니다."

그는 제대로 된 관직을 쓴 적은 없지만 조선의 거물 지도자였다. 레닌.트로츠키.쑨원.장제스.마오쩌둥, 일본의 하라 다카시 수상과 고노에 후미마로 수상, 역대 조선 총독과 모두 면담했다. 일본 천황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도 조선 독립을 역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해방 공간에서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 좌우합작 정부 수립을 추진하던 그는 당시 조선 민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치 지도자였다. 그러나 1947년 암살당한 그는 빨갱이로 몰려 합당한 평가조차 받지 못했다. 2005년에야 복권돼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는다. 특급도 1급도 아닌 2급 서훈에 그쳤지만.

"몽양은 방향에 집착하면 가정은 깨질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가 누구냐'를 고민하는 정체성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몽양은 일본의 고려 신사 방명록에 '혈농어수(血濃於水)-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글을 남겼다. 사상보다는 민족 통합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남긴 그의 필적은 책의 표제로 쓰였다.

"지금도 진보-보수의 이념 논쟁과 편 가르기가 횡행해 국가 성장 동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남한 내에서만이라도 통합의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설의 바탕이 된 저자의 역사 인식은 좌우 모두에게 공격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좌우통합을 주장하던 여운형이 좌우 양측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던 것처럼. 그러나 독자의 역사 인식이 어떠하든 소설 자체는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사실'을 따를만한 드라마는 없으니 말이다. 여운형.이승만.박헌영 등 역사적 인물들의 성격과 사생활 등까지 증언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재현한 저자의 내공이 만만찮다.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낸 그는 '다시 읽는 하멜표류기' '연개소문을 생각하다' 등의 책도 썼다.

"책 300권 분량에 달하는 자료를 섭렵했습니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의 자료를 모으고 1980년대 당시 생존자 70여 명을 인터뷰하느라 7년이 걸렸지요. 그걸 재구성해 소설을 쓰는 데 또 4년…." 역사적 사료로도 가치가 있는 책인지라 미국 하버드대 등 주요 도서관엔 원작이 비치돼 있단다. 고 강원용 목사와 장명국 내일신문 대표, 몽양 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등의 지원으로 절판됐던 책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역사는 과연 승리한 자만의 것일까. 몽양은 비록 현실에선 졌지만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가 됐다. 적어도 이 책에선 말이다.

글=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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