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담식 비밀외교 퇴조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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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평통 위원장 전격교체 의미>
제2차 남북 고위급 회담을 목전에 두고 북한이 대남전략 수립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의 사령탑 허담(65)을 전격적으로 교체시킴으로써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교체는 북한의 대남·대외정책기조가 변화되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더욱 주목된다.
허의 신분변화가 포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말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회의가 끝난 직후.
김일성의 사촌매제이기도 한 허는 이때 6년 동안 맡아왔던 당 비서국 국제담당 서기직에서 물러났다.

<올 들어 자리탈락>
허는 조평통 위원장 자리와 89년11월에 임명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위원장 및 정치국원의 자리는 고수했지만 북한권부의 핵심인 노동당 비서국의 서기자리를 내놓은 것은 중대한 신분상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후 지난 10일 조평통 위원장자리까지 내놓게 됨으로써 허는 올 들어 자리가 하나하나 박탈되어 가는 인상을 주고 있다.
허의 신분변화로는 「건강악화설」과 「좌천설」이 있다.
「건강악화설」은 허가 곧 죽을지도 모르는 중병에 걸려있어 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
노동당 소식통도 병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같이 설명했다고 일본의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지난8월 「일한 우호친선의배」의 일원으로 평양의 노동당 중앙당사를 방문한 일본의 언론인에게 노동당 관계자가 『허담이 건강상의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설명했다는 것도 중병설의 근거다.
따라서 이번의 조평통위원장 해임도 건강악화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
「좌천설」은 지난5월 당 국제담당 서기직 해임과 이번의 조평통 위원장 해임을 동일선상에서 파악해야된다는 주장.
「좌천했다」고 보는 일본의 분석가들은 『지난5월 허가 당 서기직을 박탈당한 것은 대남접촉 및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실상권력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보았다.
일부에서는 허가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직을 아직 고수하고 있는 점을 들어 「미일에 대한 의회차원의 외교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으나 좌천설의 입장에서는 「외교위원장자리가 명예직에 불과한 사실상의 한직」이라는 점을 들어 허의 좌천을 확실시했다.
좌천의 이유로는 ▲허담이 정무장관시절의 박철언 의원과 가졌던 비밀교섭이 실패했고 ▲또 다른 협상파트너였던 당시 김영삼 민주당총재가 3당 합당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에 배신감을 준 셈이며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시베리아 공동개발」약속을 해놓고도 이를 어기는 등 허가 직접 담당한 일련의 대남 교섭이 실현되지도 못한 채 오히려 공개만 해 남한의 정치선전에만 이용된 것이 지적퇴고 있다.
이에 따라 허의 대남정책 수행에 의문이 제기되고 또 허가 유지하고 있던 대남채널이 붕괴되어 새로이 채널을 복원해야 했던 점도 사평통 위원장 해임을 앞당기게 만들었다는 것.
허는 실제로 지난 5월부터 대남 접촉과 관련, 일체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정책실패로 인한 좌천」과 「건강상의 이유」 가운데 어느 실이 옳은지는 아직 어느 쪽도 확인된 바는 없다.

<교체 후 질적 변화>
그러나 허로부터 당 국제담당 비서직을 이어받은 김용순의 외교전면등장과 북한의 대남·대일 접촉 등에서 나타난 일련의 변화는 허의 정책실패와 북한의 대남외교 방향 수정을 위해 허를 제거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김의 등장이후 북한외교는 ▲대소비판 ▲대일 적극접근 등 질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대남정책에서도 나타나는 이같은 일련의 전향적 측면들은 허담식의 비밀외교와 현상유지 자세를 퇴조시키고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사고가 필요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편 허의 후임 윤기복은 81년 조평통 부위원장에 기용된 뒤 89년2월 범민족대회준비위원장, 9월에는 임수경 석방투쟁 임시위원장을 맡고 90년5월에는 최고인민위원회 산하 통일정책심의위원장에 임명된 남한통.
1926년 함남출생으로 서울수송국교·경기중학·만주종전·소련유학을 거친 윤은 69년 국가계획위원장, 84년 중앙인민위원회 경제정책위원화 제1부위원장 등을 지낸 경제전문가이기도하다.
윤이 81년부터 조평통에 기용된 것은 71년 서울의 남북적십자회담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뒤 대남 업무를 효과적으로 지원해온 것이 평가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윤, 범민족 준비도>
성격은 근면한 편으로 경기중학시절 하숙을 같이했던 전 공당 사무총장 신형식씨는 『윤이 굉장히 부지런하고 궂은 일도 도맡아했었다』고 회고했다.
윤의 위원장 기용으로 조평통의 대남 정책은 상당히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
즉 윤이 그동안 남북대화·실무부분보다 범민족대회·임수경 석방 등 통일전선 전술적 차원의 대남 업무에 주로 활동해왔던 것으로 미루어 북한이 국회회담·경제회담 등 다방면 교류를 통일전선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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