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흥겨운 우리가락의 멋을 배운다|「전통문화」수강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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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자, 모두들 부채를 좀더 높이 올려보세요. 두팔과 어깨는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곡선을 그리듯 돌리면 됩니다.』
지난9일 오후 중앙문화센터 무용 연습실.
공휴일인데도 아침 일찍부터 나온 30여명의 주부들이 화관무·부채춤 등 우리고전무용 연습에 한창이다. 바로 이틀 후로 다가온 결식아동을 위한 일본 동경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총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던 이들은 중앙문화센터 한국무용반 주부수강생들.
무용복을 차려입은 맵시며 음악에 맞춰 추는 춤사위가 얼핏 전문 무용인으로 여겨질 만큼 수준급이나 이들은 모두 40대 이후 취미로 시작한 아마추어 주부들이다.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우리고유의 가락에 맞춰 춤을 추다보면 「아, 우리 것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나요. 외국문화를 접할 땐 느낄 수 없는 우리전통예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거죠.』 이 센터에서 6년째 한국무용을 배우고 있다는 주부 장영자씨(47·서울 서대문구 연희동)는 나이가 들수록 우리 것이 좋아 한국무용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한국무용·탈춤·민요·판소리·단소 등 우리의 전통문화를 배우고 이에 심취한 주부들이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약 4∼5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주부들의 전통문화 수강열기는 대단해 이런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는 단체의 강의실에는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주부들로 매번 만원을 이를 정도.
지난 정년 최초로 주부강습반을 개설했던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내 봉산탈춤·강령탈춤·남사당놀이·민요교실 등을 거쳐간 주부만도1천∼2천명 가량 되며 흥사단 주부민속교실에서도 5백∼6백명의 주부들이 전통문화를 배워갔다. 최근에는 대규모 문화센터들이 생겨나면서 더욱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처음에는 에어로빅을 대신한 운동으로 생각하고 시작했지요. 그런데 차츰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돼 이제는 탈춤박사 소리를 들을 정도지요.』
문화재전수회관에서 3년째 탈춤을 배우고 있는 주부 허인자씨(48·서울강남구압구정동)는 「탈춤은 한국판 오페라」라며 이같이 훌륭한 것을 자녀에게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올 여름엔 아예 딸과 함께 탈춤을 배웠다.
이같이 우리의 전통문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것들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매우 좋다는 점. 온 몸을 계속 움직이며 매번 펄쩍펄쩍 뛰는 탈춤은 에어로빅을 능가하는 미용체조이며 뱃속 깊은 곳의 소리를 토해내는 판소리나 민요, 또 저절로 마음이 가라않아지는 단소 등은 중년기 주부의 정신건강에 더없이 좋은 환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부부동반이나 친목모임에 참석하는 주부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자리에서 유행가나 서양춤보다는 우리의 것을 한바탕 보여 주면 「멋있는 여성」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주부 유영순씨(53·서울송파구방배동)는 말한다.
봉산탈춤 보존회 윤옥회장(66·인간문화재)은 『주부들의 수강열성이 대단해 매년 연말에는 공모하고 있다』며 『우리의 생활문화를 일궈가는 사람들이 바로 주부라는 점에서 주부들의 전통문화 수강열기는 더욱 귀중하며 앞으로도 이러한 붐이 계속될 것 같다』고 밝혔다. <문경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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